서리풀이 무성했다는 상서로운 땅 서초(瑞草). 그곳에 서초 올레길이 있다. 늘 찌들은 공해속에 파묻힌 듯한 도심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약 3~4km에 달하는 서초 올레길을 홀로 걸으면서 흠뻑 땀을 흘렸다. 울창한 숲속에서 맘껏 산소도 삼켰다. 누에다리의 키스하는 조형물에서 소원을 빌었고 파리에서 봤던 몽마르뜨 언덕에서는 한참이나 여가를 즐겼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이 모여 산다는 서래마을을 조망했다.
복잡한 곳에서 늘 일만 하는 바쁜 도시민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는 너무나 일에 파묻혀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데. 멀리 떠나지 않아도 이렇게 좋은 숲속 산책길이 있는데. 서초 올레길은 한마디로 감동적이다.
시작점은 고속터미널 센트럴 시티의 센트럴 육교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독특한 모습을 한 육교. 휘황하고 복잡스러운 대로. 넓은 대로에는 무수한 차량이 쉴 틈 없이 바삐 운행되는 육교 주변 풍경. 그런 도심이 믿기지 않을 만큼 순간, 한적한 오솔길이 반긴다.
강남 한복판에 이런 호젓한 길이 있었을까? 개발되기 전의 모습이 이랬을텐데. 잘 정돈된 팻말. 걷는 시간 잘 가늠하라고 써 놓은 거리 표기가 아주 유용하다. 한두사람이 걸을만한 길. 곳곳에 쉬어가라는 벤치가 있고 울창한 숲길이 이어진다.
성모병원 쪽에는 햇살이 가려줄 산길이 잠깐 사라지고 미도 아파트쪽에 주민들을 위한 듯 체육시설을 만들어 두었다. 이내 또 숲길이다. 오름은 나무 계단으로 이어진다.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이 간간히 스쳐 지나친다. 흑인도 만나고 제복입은 수녀도 스쳐 지나친다. 휴식을 취하라는 정자와 벤치도 지나치면서 이내 만나는 곳은 서초올레 길의 명물 누에다리다.
2009년 서초경찰서 뒤 몽마르뜨 공원과 맞은편 서리풀 공원을 이어주는 ‘누에다리’. 다리를 사이에 두고 우측 북쪽으로는 남산 타워를 바라본다. 맑은 날에는 멀리 북한산, 도봉산까지 조망할 수 있는 지점이다.
남쪽으로는 우면산과 예술의 전당이 보인다. 다리 밑으로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부산스럽게 차량들이 이동한다. 이곳에서 서면 이렇게 하냥 행복한데. 일상을 잠시 잊어도 되는데 말이다. 마치 딴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마음 한켠이 조용히 가라 앉는다.
다리 밑에서 보면 아파트 8층 높이(23.7m)다. 수십 년전 아스팔트 도로가 개발되면서 단절되어 버린 녹색길을 이 누에다리가 이어주고 있는 것. 한낮의 누에다리도 좋지만, 야경이 더 멋진 다리다. 2,376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총천연색 불빛이 매혹적인 곳. 낯과 밤을 다 즐길 수 있으니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다리를 비껴나자마자 우측에 누에고치 조형물이 반긴다.
고치 위에 앉은 누에 두 마리가 동그랗게 몸을 구부려 입을 맞추는 모양이다. 꿈꾸는 누에라는 뜻일까? 사랑에 취해 몽롱해진 누에일까? 잠몽(蠶夢)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평균 500개의 알을 낳고 고치 하나에서 1㎞가 넘는 비단실을 뽑는다는 누에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고 적혀 있다.
또 이 조각의 입모양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적혀 있다. 누구나 으레 한번쯤은 손으로든, 입으로든 맞춤을 할 것이다.
길은 몽마르뜨 공원과 연결된다. 파리 시내, 가장 높은 언덕에 있는 몽마르트르 공원의 이름을 따 붙였다. 아마도 인근 프랑스인들이 모여 사는 서래마을이 있기 때문이리. 서래마을은 원래 마을 앞의 개울이 서리서리 굽이쳐 흐른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지금은 ‘쁘띠 프랑스(작은 프랑스)’, ‘서울 속의 프랑스’ 라고 불린다. 한남동에 있던 서울 프랑스학교가 1985년 옮겨 오면서 학교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프랑스 마을이 형성된 것이다.
주한프랑스대사관 직원, 기업주재원 등 국내 거주 프랑스인 중 절반 정도가 서래마을에 살고(약 600여 명) 있다. 서래마을에서 프랑스인들을 만나기는 쉽다. 서울의 특별한 ‘거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들이 모여 살다보니 주변 풍치도 문화도 바뀌어 간다. 한, 불 음악축제, 가장행렬 퍼레이드, 명절행사 등을 통해 두 개의 문화가 서로 뒤섞인다. 또 외국인을 위한 주민센터인 서래글로벌 빌리지센터등이 있다.
서래 마을 뒤쪽 공원의 시원한 정자에 앉아 한참동안 머문다. 목이 말라 공원 내 약수에 물을 마시면서 귀여운 프랑스 여학생 두 명과 조우한다. 그들에겐 단지 이웃 공원일 것이다. 몽마르트르 공원에서 서래마을을 내려다본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니 집들이 제법 유럽식으로 느껴진다. 정작 안쪽을 배회할 때는 여느 서울 도심과 별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서래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널찍한 서리풀 공원을 잇는 다리. 서리풀 공원은 54만여㎡에 달해 도심에서는 보기 힘든 넓은 녹지공간이다. 입구는 마치 산행을 하는 듯 가파르다. 제법 경사도 있는 길이라서 숨을 헉헉거려야 한다. 숲길은 계속 이어지고 정자, 벤치가 쉼터 역할을 해준다. 산책 나온 주민들도 많다. 이후부터는 물 마실 곳이 없다. 약간 지친다 싶을 즈음 청권사 쉼터를 만난다.
세종의 형이자 둘째아들인 효령대군(1396~1486)과 그의 부인 예성부부인 해주정씨(1394~1470)의 위패를 모신 사당과 묘소인 청권사(유형문화제 제 12호, 방배동 190-1). 영조 12년(1736) 칙명으로 경기 감영에서 지었다. 정조 13년(1789)에 청권사란 편액을 왕으로부터 받았다.
하지만 청권사 돌담을 스쳐 지나쳐 내려오면서도 아쉽지만 입구를 찾지 못한 채 놓쳐 버리고 만다. 아마도 또 한번 이 좋은 길을 걸어보라는 의미가 아닐는지. 마냥 걷기 좋은 길. 짙은 녹음을 뽐내는 푸른 숲은 한낮 더위를 씻겨주는 시원한 바람이 길벗이 되어 주는 길. 한번쯤 가봐야 하지 않을까?
사진은 서리풀공원.

여행정보
○ 지하철 : 고속버스역 3번 출구 이용해 매리어트 호텔 앞에서 육교를 건너면 된다.
○ 맛 집 : 신세계 백화점 지하 식당가에 맛있는 집이 많다. 또 지하보도에는 굴국밥집(02-535-2213)이 맛있고 경부선 터미널에는 실비집(청국장, 순두부)이 가격대비 맛좋은 집이다. 반찬은 셀프로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다. 그 외 서래마을을 이용해도 된다. 프랑스 요리는 물론이고 서래양곱창(02-3477-0234)도 유명하다.


■이신화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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