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은 용감한 자를 좋아한다

요즈음은 ‘소셜(social)네트워크’가 대세다. 소셜네트워크의 대표 주자 ‘페이스북’은 전 세계 가입자가 7억 명을 넘어섰다. 세계 인구의 십분의 일 이상이 가입한 셈이다. 그런데 하버드대학을 중퇴하고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주커버그는 천재적 발상과 개발력에서는 뛰어났으나 회사의 덩치가 커지자 뒷심이 딸리기 시작했다. 2007년 겨울, 그가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영입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 1969~)이다.
당시 그녀는 구글 해외부문 부사장이었는데 주커버그는 그녀를 6주간이나 끈질기게 찾아가서 그녀를 설득했다. 육고초려인 셈이다.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를 수석 졸업한 그녀는 최고의 학생에게 수여하는 존 윌리엄스상까지 수여한 최고의 인재였다.
졸업 후 최고의 컨설팅 회사인 매킨지에서 근무하던 그녀는 존경하는 스승 로렌스 서머스의 부름을 받아 워싱턴으로 간다. 재무부 차관을 지내던 서머스가 장관이 되자 샌드버그는 수석보좌관이 되어 스승을 보필했다.
클린턴 행정부의 임기가 끝나고 워싱턴을 떠날 즈음인 2001년 1월, 그녀는 구글의 구애를 받아서 구글로 스카웃이 된다. 벤처기업의 경험이 전무한 샌드버그였지만 뛰어난 통찰력과 직관력으로 사업의 핵심에 다가섰다. 그녀는 클릭당 비용모델을 통합한 광고판매기법을 동원해서 검색광고 시장에 혁명을 일으키는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했고 이를 성공시킴으로서 구글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샌드버그는 2007년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25세에 청년 마크 주커버그를 만나자 마음이 흔들렸다. 수익모델 미비로 적자에 허덕이던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의 COO(Chief Operating Officer) 자리를 맡을 사람은 그녀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매달렸다. 직관력이 강한 그녀는 페이스북의 미래를 보았고 구글이라는 세계 최고의 인터넷 회사를 떠나는 결단을 내린다. 그녀는 구글에서와 같이 치밀한 전략으로 광고수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녀는 친구와 지인들의 취향과 경험을 나누는 페이스북 고유의 특성을 살리면서 시스템이 자동화되어 모니터링도 쉽게할 수 있는 광고 방식을 창안했다. 그녀는 자동화 시스템을 사용해 사용자와 광고주, 파트너 웹사이트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샌드버그의 ‘자동화소셜광고’와 중복된 프로필을 제거해주는 자동화 툴의 성공은 가히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그녀가 영입되었을 때 6700만 명이던 회원수는 7억 명으로 폭증했고, 매출 또한 해마다 두 배씩 성장했다. 그 사이 본사 직원은 130명에서 2500명으로 늘었는데 그녀는 구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원을 늘리지 않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것은 구글이 직원수가 2만6000명이 넘어서면서 혁신이 아닌 관료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샌드버그는 뉴욕 버나드 여대 졸업식 축사에서 자신의 인생철학을 이렇게 말했다.
“절대로 두려움이 원하는 것을 못하게 내버려두지 마세요. 여러분이 가는 길 위의 장애물이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행운은 용감한 자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해보지 않고서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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