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가 없으면 이익도 없다

한 번의 실패도 겪지 못한 사람은 아직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10여 년 전 IMF외환위기를 겪으며 이 땅에는 무수한 패배자들이 생겨났다. 좌절하고 무릎을 꿇은 사람도 많았지만 그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재도약에 성공한 사람도 많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코스닥 시가총액 1위 기업 셀트리온 그룹의 서정진(1957~)회장이다. IMF 당시 대우자동차의 워크아웃으로 서정진은 하루아침에 백수신세가 됐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출근할 곳이 없어졌다. 그는 같이 해고 된 10여명의 동료들을 모아 일명 ‘백수사무실’을 차렸다.
서정진은 사업 구상을 위해 방문했던 샌프란시스코 ‘바이오밸리’에서 바이오산업의 미래를 보았다. 헬스케어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을 직감했다. 그는 제약 산업 시장이 1000조원으로 500조~600조원 규모인 자동차 산업보다 크다는 데 주목했다. 각종 보고서를 닥치는 대로 읽고 탐구한 끝에 유명한 항체의약품들이 2013년 이후 줄줄이 특허가 만료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는 2013년부터는 복제약을 만드는 설비를 갖춘 기업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을 직감적으로 파악했다. 바이오산업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자 그는 동료들을 설득해서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자동차 세일즈맨 출신인 그들에게는 한계가 있었다. 무엇을 하든지 끝장을 보는 성격인 그는 바닥부터 훑는 해외 순례를 통해 수백 명의 바이오 전문가와 바이오 기업 관계자를 만나 보고 ‘바이오시밀러’로 간다는 최종 결단을 내렸다.
바이오의약품은 일반 합성 화학의약품에 비해서 수십 배내지 수백 배까지 비싼 경우가 많은데 바이오의약품의 복제약인 바이오시밀러는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개발비용과 기간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해서 매력적인 분야였다. 오리지널 신약에 비해 개발비용 10분의 1, 개발기간은 절반인데, 성공확률은 10배가량 높은 틈새시장이었다. 더구나 2013년 이후 특허가 만료되는 의약품을 바이오시밀러가 대체하기 시작하면 엄청난 규모의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꿰뚫어보았다.
2000년, 서정진은 세계적인 생명공학기업인 제넨텍으로 날아갔다. 그 회사가 에이즈 치료제 생산대행 업체를 찾는다는 정보를 접한 것이다. 그는 단백질의약품 제조 기술을 주면 제품을 염가로 납품하겠다고 끈질긴 설득해서 2002년 제넨텍의 기술이전으로 회사를 설립하는데 성공한다.
CMO(의약품생산대행)로 다국적 제약사 수준의 기술을 축적한 셀트리온은 2005년 세계 7위 다국적 기업인 BMS와 10년간 20억 달러(약 2조 원)의 바이오신약 공급계약을 맺음으로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셀트리온은 2010년년 1800억원 매출에 1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을 정도의 놀라운 실적을 올렸다. 셀트리온은 현재 이 분야에서 세계 3위의 생산능력을 갖고 있다. 서정진은 말한다.
“우리는 먼저 미래를 예견하고 과감히 투자해 시장을 준비해왔어요. 리스크가 없으면 이익도 없죠. 우리의 최대 경쟁력은 남들보다 적어도 4~5년 정도 앞선 타이밍이죠. 화학합성 의약품과 달리 단백질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제약사는 세계에서 10개사 정도에 불과해요. 앞으로 100조원으로 성장할 시장에서 20%만 장악해도 삼성전자 같은 새로운 성장동력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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