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의 아버지

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은 모든 것이 엉망이었고 잿더미뿐이었다. 국민은 신의와 좌절 그리고 열등감에 사로 잡혀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 속에 곱슬머리에 키 작은 안경잡이 소년 데스카 오사무(手塚治蟲: 1928~1989)가 있었다. 그는 만화에 미친 아이였다. 오사카 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지만 수업시간에도 만화를 그리고 있다가 강의실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는 1946년 18세의 나이에 ‘마짱의 일기장’이라는 4컷 만화를 신문에 연재하며 만화가로 데뷔한 데스카는 다음해에 장편 만화 ‘신보물섬’을 간행해서 40만부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의사의 꿈을 버리고 만화에 무한한 열정과 재능을 쏟아 붓기 시작한 그는 일본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우주소년 아톰’, ‘불새’, ‘블랙잭’등 700여 편의 만화와 ‘숲의 전설’, ‘밀림의 왕자 레오’ 등 60여 편의 애니메이션을 그렸는데 그것들은 패전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일본의 어린이들에게 더없는 희망을 주는 것들이었다.
특히 ‘우주소년 아톰’은 16년 간 잡지에 연재하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는데 힘도 세지만 마음씨 곱고 귀여운 아톰은 일본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전령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톰을 읽은 어린이들은 자신을 아톰과 같은 주인공으로 생각하며 그렇게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톰을 읽으면서 로봇과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어린이들이 자라나서 훗날 일본의 전자산업과 로봇산업을 일으킨 주역이 되었다.
그런데 데스카 오사무는 어떻게 해서 그런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그가 ‘영화 같은 만화’를 그렸기 때문이었다. 스토리 자체가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음은 물론이고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영화 같은 만화’의 매력에 빠져서 독자들은 만화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데스카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즐긴 영화 덕분이었다.
데스카의 아버지는 프랑스제 가정용 영사기를 구입해서 집에서 아들과 함께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았다. 어려서부터 수많은 영화를 접한 데스카는 자신도 모르게 만화에 영화적인 기법을 도입해서 그렸다. 가령 자동차가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클로우즈 업’ 기법은 당시에는 몹시 충격적인 장면으로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1963년 데스카는 ‘우주소년 아톰’을 TV만화영화로 만들어서 본격적인 SF 로봇 만화의 시대를 열었다. 이 만화영화는 4년간 방영되었고 미국으로 까지 수출돼 일본 TV애니메이션이 세계를 재패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는 다양한 만화 소재의 개발로 평생 15만 쪽이 넘는 작품을 그렸는데 과학기술과 인간, 전쟁과 평화, 선과 악 등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를 탐구해 만화를 일본인들의 삶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한 부분으로 만들었다. 그는 일본 만화를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올려놓은 만화가로 평가를 받으며 ‘일본 만화의 아버지’, ‘만화의 신’이라고 불린다.
데스카는 1989년 위암으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병원 침대에서 펜을 쥐고 있었으며, 그가 최후로 남긴 말은 ‘일할래. 일하게 해줘’였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의 서점에는 420권 분량의 전집판을 비롯해 그의 주요 작품들이 빽빽이 꽂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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