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개표요건인 투표율 33.3%를 넘지 못하고 무산됐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복지정책 대결에서 민주당이 1차 승리를 거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투표결과에 책임을 지고 시장직을 사퇴했다.
투표의 결과는 엄중한 것이다. 하지만 과연 반겨야할 승리인가. ‘전면적 무상급식’을 막으려고 홀로 뛴 오세훈 서울시장의 패배인가. 승리는 달콤해도 쓰디쓴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흔하다. 무상시리즈 빗장이 풀리면 국가적 재앙이 오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패배는 몰락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아름다운 패배’라는 말도 있다. 복지 포퓰리즘에 제동을 걸겠다고 한 시도는 평가해야 한다.
이번 주민투표는 단순히 서울시의 무상급식 문제가 아니었고 서울이라는 특정지역에 국한되는 문제도 아니었다. 대한민국 복지의 길을 묻는 투표였으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쉽게도 복지 포퓰리즘을 막아낼 중대한 기회를 날려 보내고 만 것이다.
투표결과를 놓고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제 각기 해석을 달리 하지만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한국의 미래다. 민주당은 이번의 승리로 보편적 복지정책 전반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받은 것처럼 행동하며 무상의료, 무상보육, 무상교육 주장을 펼칠 것이다.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정책을 망국적이라고 비판하던 한나라당도 스스로 복지 포퓰리즘에 빠져들어 갈팡질팡하고 있다.

정치권 복지포퓰리즘 우려돼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를 둘러싼 진짜 싸움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벌어질 것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포퓰리즘이라는 망국의 급행열차를 타고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더 많은 혜택을 베풀겠다고 경쟁하려 할 것이다. 곡간 사정을 따질 겨를이 있겠는가. 표만 얻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는 게 정치권 아니던가. 그래서 더 많이 퍼주기 경쟁은 화려하게 펼쳐질 것이고 국민의 살림살이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게 곡간 사정 따지지 않는 퍼주기의 예정된 결과다.
지금의 세계경제위기는 수출로 버티는 한국경제에 치명적이다. 세계경제전쟁에서 패배하면 버틸 길은 없다. 세계경제 위기는 각국 정부의 과도한 재정지출에 따른 재정악화 때문에 발생했다. 미국과 일본은 물론 서유럽의 경우가 다 그렇다.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재정지출을 늘려 복지천국을 향해 달리지 못해서 안달하고 있는 게 오늘의 한국이다.
학생들에게 교육의 본질과 관계없는 점심먹이는 문제로 이처럼 시끄러운 나라가 또 있을까. 학교는 근본적으로 밥을 먹이는 곳이 아니다. 밥만 먹이면 아이들이 자라는 것도 아니다. 한국교육의 과제는 수두룩한데 학생들에게 공짜로 점심먹이는 일이 중요한 교육이슈가 돼있는 것 자체가 한심한 일이다.

능력에 걸맞게 복지 늘려야

복지확대가 좋은가 나쁜가를 묻는 건 어리석다. 복지 확대를 누가 반대하겠는가. 복지는 결국 돈 문제다. 재원 마련할 방안도 챙기지 않고 지속 가능한지도 외면하며 통 큰 복지만을 외치는 게 문제다. 고복지(高福祉)는 고부담(高負擔)의 다른 표현이다. 복지증대는 세금을 늘리거나 국가부채의 증가로 이어지고 국가부채는 다음 세대에게 빚더미를 안기는 것인데도 지금 외상으로 황소 잡겠다며 호기를 부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무한정 퍼줄 수 있는 돈 보따리를 갖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가. 정부가 무엇이든 공짜로 해줄 것이라고 말하는 건 일종의 기만이고 사기다. 국민이 공짜에 기대고 정부는 무한정 베풀기만 하던 영국이 앓던 병이 ‘영국병’이었다. 1980년대 영국의 대처수상이 영국병을 고치는데 앞장섰다. 지금 한국사회는 ‘영국병’을 뺨치는 ‘한국병’이 곳곳에 번져있다.
복지 광풍(狂風)을 막아내고 경제능력에 걸맞게 복지를 늘려가야 한다고 말하는 정치인은 왜 없는가. 세금을 많이 내자고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서 복지에 대한 기대수준을 높이는 행동은 치졸하고 비겁하다. 정치인들이 복지를 들고 나오면 재앙이 온다는 건 이미 여러 나라의 경험에서 밝혀졌다. 복지 포퓰리즘은 망국으로 가는 내리막길임을 복지천국을 지향했던 나라들의 몰락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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