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가 지나고부터는 조석으로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음력 절기는 많이도 과학적이다.
한번은 더 가보고 싶었다. 운악산 자락에 있는 현등사를. 차량 이동이 안 되는 곳이니,
휑하니 자동차로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니, 마음 한 편에 여유 공간이 남아 있을 때 찾아야 한다.
운악산 가는 길목의 조종천 계곡도 여름을 비껴 휴식으로 들어가고 있다.

현등사 일주문을 앞에 두고 해설사의 간략 설명을 듣는다.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이유는, 그들이 흘린 말끝에 행여나 필요한 정보가 있을까 하는 속내가 있다. 해설사는 운악산이 어쩌고, 현등사가 어쩌고 하면서, 천편일률적인 설명만 해주고 있다. 학습적인 목적으로 현등사를 찾는 것이 아닌데, 그녀의 이야기는 불필요하게 길게 이어질 듯하다. 중간에 말을 끊는다. 그저 어떤 것을 포인트 삼아서 돌아보면 되느냐고.

그리고 걷는다. 등산로가 아니라 임도다. 사찰에 사는 사람들이 어찌 매일 걷고 다니겠는가? 충분히 이해된다. 도로변 옆으로 계곡과 폭포가 연이어진다. 백년 폭포, 무우 폭포 등. 울창한 활엽수 골짜기를 가르며 쏟아져 내리는 계류가 시원하다. 운악산(937.5m)은 참으로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예로부터 관악산, 치악산, 화악산, 송악산과 함께 중부지방의 5대 악산 중 하나로 꼽혔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듯하다. 경기의 소금강이라는 단어를 어찌 과장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 멋진 풍치를 느끼고 만끽하려는 등산객들이 수두룩하다. 운악산이 포천군과 가평군 경계로 나뉘어 있으니 등산객들은 분명코 산을 넘어 시군의 경계를 넘나들 것이다. 하지만 등산객이 아니라면 지역 선택을 해야 한다. 가평군 관할에서는 현등사까지 걷고, 포천군 관할에서는 무지개 폭포까지만 걷는 것도 방법이다.
현등사까지는 2㎞ 정도 걸으면 된다.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거리인데다 주변 풍치에 매료되어 힘겹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천천히, 느리게 걸으면서 충분히 운악산을 느끼면 된다. 멋진 계곡, 연이어지는 폭포들, 울창한 숲속에 스르르 내 몸이 빠져든다.

현등사를 앞에 두고 민영환 글씨가 쓰여 있는 너른 바위(글씨바위, 민영환 암각서)를 만난다. 조선 말기의 문신인 민영환(1861(철종 12)∼1905(고종 9) 선생이 기울어 가는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며 바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하고 걱정했던 곳이다. 1906년 나세환 외 12인이 ‘閔泳煥’이라 새겨놓은 암각서가 남아 있는 것. 현등사 입구에는 민영환, 조병세, 최익현의 충절을 기리는 삼충단이 있다. 민영환은 을사늑약 이후 자결했다.

암각서를 지나 휘어진 길을 따라 오르면 현등사 불이문과 108계단이 모습을 드러낸다. 깍아지를 듯한, 벼랑길 같은 곳에 만들어진 108계단은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일 정도다. 숫자를 세어보다가 놓치고 마는 계단. 다 오르면 우측에는 운악산방이라는 절집 찻집이 있다. 차도 팔고 연잎만두나 영양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왼쪽 사찰로 가는 길목에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지진탑(경기도유형문화재 제17호)이 있다.

현등사(전통사찰 제46호, 향토유적 제4호)는 신라 법흥왕 27년, 인도에서 불법을 전하기 위해 건너온 마라가미 스님을 위해 왕이 지어준 사찰이다. 오랫동안 폐사 되었다가 신라 효공왕 2년에 도선국사가 다시 중창했다. 이후 1210년 보조국사 지눌이 삼창하고 나서 현등사로 자리 잡았다. 보조국사가 폐허화한 불우(佛宇, 불당)를 발견했을 때 불우는 비록 황폐했지만 석등의 불빛만은 여전히 밝게 비치고 있어서 현등(懸燈)이라 이름 붙였다.

사찰을 재건하기로 결심한 지눌은 사찰 경내의 지기(地氣)를 진압하기 위하여 이 지진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탑은 지대석 없이 땅바닥에 풀석 달라붙은 형상이다.
경내로 들어서면 3층 석탑(경기도유형문화재 제63호)이 있고 극락전, 보광전, 지장전, 산신각, 요사채 등을 비롯해 뒤켠 가파른 산자락에도 새로운 건물이 중창불사 중에 있다. 경내에는 눈여겨볼 경기도유형문화재가 다수 있다.

지장시왕도(제124호), 현등사치성광여래도(제125호), 광해군 11년(1619) 봉선사에서 조성한 범종(제168호), 목조아미타좌상(제183호), 아청동지장보살상(184호), 미타회상도(제185호), 영조 22년(1746년)에 조성한 극락전과 영조 35년(1759)에 조성된 아미타삼존상(제185호), 화엄신중도(제193호), 수월관음도(제198호)등이 있다. 경내를 비껴 서쪽 산속으로 가면 함허당득통탑 및 석등(제199호)이 있다. 탑신에 세로로 ‘함허당득통(涵虛堂得通)’이라고 전서로 음각되어 있어 조선 초기의 승려 함허(1376~1433)의 부도임을 알게 한다. 그 옆에 또 다른 석종형 부도가 있다.

여행포인트

○ 주소 : 가평군 하면 하판리. 문의 : 현등사 031-585-0707
가평군청 산림공원과 : 031-580-2480

○ 가는길 : 서울 → 46번 경춘고속도로 → 화도IC → 46번 국도 → 청평검문소에서 37번 국도로 좌회전 → 연화교차로에서 387 지방도로 우회전 → 현리 → 왼쪽에 운악산 입구(하판리). 혹은 태릉-47번 국도 → 서파교차로에서 37번 국도 이용 → 현리 순으로 찾아오면 된다.

○ 맛집과 숙박 : 입구에 두부 잘 하는 집이 즐비하다. 또 숙박할 곳도 여럿 있다.

■글.사진 : 이신화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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