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길고 강력한 번영을 누린 제왕

오늘날 중국이라는 광대한 판도를 만들어낸 사람은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의 황제 강희제(康熙帝:1654~‘재위 1661∼1722’)다. 할머니는 몽고족, 어머니는 한(漢)족으로 만주인·몽고인·한인의 피를 모두 이어 받은 그는 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제위에 올라 61년간 통치하며 중국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룩했다. 7살 9개월의 어린 나이로 즉위한 강희제는 색니·소극살합·알필륭·오배(鰲拜) 등 네 명의 고명대신에게 둘러싸여 섭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사람은 강희제의 아버지 순치제 앞에서 충성을 다하고, 생사를 함께 할 것을 맹세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들이 했던 선서를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네 사람은 권력투쟁에 들어갔고 최후의 승자인 오배는 강희제도 안중에 두지 않고 권력을 휘둘렀다.
강희제가 직면했던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오배는 성격이 난폭하면서도 용맹해서 다루기 매우 어려운 자였다. 게다가 조정 안에는 오배의 심복들로 가득했다. 그는 거짓 조서를 꾸며서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자들을 모조리 살해했고 조정 내에서도 권력을 전횡하면서 군신의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 담대한 성격의 소년 군주가 그의 전횡을 제지하고 나서자 오배는 크게 화를 내며 팔소매를 걷어 올리며 강희제를 때리려고 달려들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강희제는 두려움을 느끼고 어쩔 수 없이 양보해야 했지만 그때부터 오배를 제거하고 자신의 권력을 되찾을 탁월한 지략을 짜기 시작한다. 당시 오배는 군권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그를 체포할 경우 오히려 자신이 당할 것을 알고 소년 군주는 오배를 앞에서는 늘 ‘철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남몰래 자신을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소년 결사대를 키워냈다.
1669년, 열여섯 살이 된 강희제는 모든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그는 오배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소년 결사대를 병풍 뒤에 배치하고 오배를 불러들였다. 오배는 평소 천진하기만 해보이던 소년 군주를 얕잡아보고 혼자 입궐해서 업무보고를 했다. 강희제가 신호를 하자 소년 결사대가 우르르 달려 나와 오배를 순식간에 포박했다. 방심하고 있다가 어이없이 당한 오배는 강희제가 빙긋이 장난스럽게 웃는 모습을 보고 평상시처럼 장난을 치는 줄 알고 ‘폐하, 장난이 지나치십니다’하고 항의를 했다. 그 순간 소년 군주의 낯빛은 싸늘하게 변했다. 그리고 준엄한 목소리로 그동안 조사한 오배의 온갖 월권과 배임 행위를 낱낱이 열거하며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재빨리 대표적인 오배파 신하들을 조정에서 쓸어내고 마침내 천하의 주인이 되었다.
일거에 오배 일당을 제거한 강희제는 오배의 박해를 받았던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관직을 복귀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오배가 강점했던 백성들의 전답을 돌려주고 정부 기관도 개혁했다. 조정을 장악한 강희제는 민생 안정을 최우선으로 두고 정책을 펼치며 문무를 겸비한 지도력으로 중국을 통치하기 시작했다. 그는 타고난 명민함과 지략으로 각 부족의 정치적, 군사적 위협을 극복해나갔다. 그는 8년간 끌던 삼번의 난을 진압하고 대만까지 점령하였으며 러시아와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고, 몽고에 직접 출정하여 정복했으며, 티베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여 중국 역사상 가장 넓은 판도를 확정했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강희제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중국이 본받아야 할 위대한 시기는 강건성세의 시기이고, 강희제는 가장 본받아야 할 황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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