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표현이지만 ‘사색의 계절’ 가을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진지한 영화 개봉이 줄을 잇고 있다.
문학에 관한 메타포를 기저로 한 독일의 코믹 멜로 <릴라 릴라 >, 광주 인화학교에서 자행되었던 청각 장애인 성추행 사건을 묻는 사회 고발 드라마 <도가니>, 사스의 공포를 되살려 낸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젼>, 197개국 8만 명이 참여한 2010년 7월 6일의 일상을 편집한 감동적인 다큐멘터리 <라이프 인 어 데이> 등이 그것이다.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위 네 편의 영화와 달리, 강렬한 메시지 전달보다 과거를 회상하며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배려한 애니메이션이다. 일본 애니계의 ‘황금의 손’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과 제작을 맡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2011년 작이다.
이작품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마지막 순정 애니인 곤도 요시후미 감독의 <귀를 기울이면>(1995)을 연상케 하는 첫 번째 사랑 이야기라는 평을 듣고 있다. 현실에 발을 디딘 인간의 이야기이고, 소년 소녀의 사랑과 학교생활을 그린 투명하고 착한 드라마이며, 시대 재현에 정성을 다하여 향수를 자아내며, 단정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에서 귀에 익은 음악까지, 세시봉 세대를 한껏 위무해 주기때문이다.
<고쿠리코 언덕에서>는 1980년부터 고단샤가 발행한 만화잡지 <나카요시>에 연재되었던 사야마 데쓰로 글, 다카하시 지즈루 그림에 기초했다. 1963년의 요코하마가 배경으로, 도쿄 올림픽이 열리기 전 해라는 시대적 배경은 낡고 오래된 것을 없애고 새로운 것을 세우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던, 전통 고수와 경제 발전 논리가 부딪히던 상징적인 해로 설정되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신구 대립은 메이지시대에 지어진 카르티에라탱이라는 동호회 건물을 보존하느냐 새로 짓느냐로 각을 세우는 학생과 학교 측 주장으로 대변된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학생들이 신문사, 철학연구회, 화학 실험실 등 추억의 동아리 활동 장인 낡은 건물을 청소하고 이사장을 찾아가 호소하는 것으로, 전통 보존에 손을 들어준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극장 문을 나서서도 내내 귓가에 맴도는 음악의 서정성으로도 유명하다. <코쿠리코 언덕에서>도 1960년대에 빌보드차트 1위에 올랐던 사카모토 큐의 전설적인 노래 ‘위를 향해 걷자’ 등 귀에 익은 아름다운 곡들을 들을 수 있다.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자 용, 인간, 마법사가 공존하는 판타지 세계를 그린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의 미야자키 고로가 감독했다.

■옥선희
영화칼럼니스트 eastok7.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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