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 경기 ‘썰렁’…中企 불황걱정 커


주문감소·자금상황 악화조짐 보여
유럽 발 재정위기가 국내 실물경제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생산현장의 중소기업들사이에서 장기 불황으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문 감소와 자금난에 직면한 중소기업들이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인들은 연말을 앞두고 자금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신용경색 방지를 위한 정부차원의 대책마련을 요청했다.
□실물경기 전망 어두워=“5년은 갈 것 같습니다.” 폐열회수용 설비기기를 생산하는 S사 김 대표는 글로벌 재정위기의 여파가 올해 연말쯤부터 몸으로 느껴질 것으로 보고 있다. IMF는 우리나라만 영향을 끼쳐 비교적 단기간에 끝났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어 5년은 갈 것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음향기기를 생산하는 E사 양 대표도 2008년 금융위기 때 만큼이나 경기가 나쁘다고 밝혔다.
내수는 오히려 수출보다 더 나빠 매출이 40%나 감소한 상황이다. 회사 수출비중이 30% 내외지만 이같은 불황이 올 여름부터 시작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양 대표는 “처음에는 휴가철 비수기라 안 좋은 줄 알았는데 매출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올해 매출이 작년에 비해 10억 정도 줄어들 전망”이라고 밝혔다.
주방용품 소재를 납품하는 P사 손사장은 “건설경기 침체로 3년째 사업이 힘들다”며 “예전에는 한달전에 발주가 들어왔는데 요즘은 하루하루 발주 받아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또 “중국에서 원소재를 수입하는데 최근 환율 불안정으로 수급까지 불안정해 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그는 “경기가 나빠지면 자금이 돌지 않는데 그럴 때는 보증기관이 만기 연장도 안해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사장은 “거래기업 납품처의 60%가 대형마트인데 매대 당 내야하는 판매관리비, 행사 강요 등으로 거래기업들이 수익을 못 내고 있다”며 “상생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살생행사”라고 말했다.
남동공단 관계자는 “최근 공단내 설비투자 감소 여파로 기계업종 등이 특히 고전한다”며 “건설경기 불황에 따라 건축자재업체들도 상황이 좋지 않다”고 전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현경제상황에 대해 38.3%가 위기상황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자금지원 확대를 우선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금상황 나빠져=경기가 나빠지면서 중소기업을 가장 옥죄고 있는 것은 자금사정이다. 거래 기업들의 사정도 좋지 않다보니 대금 결제를 미루는 사례가 빈번하고 은행권의 대출회수 불안감도 커지기 때문이다.
섬유원단을 생산하는 B대표는 “18년 동안 회사를 운영하면서 심한 자금난은 없었으나, 올해 자금 융통의 어려움이 다소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B사장은 “회사의 거래방식 상 물건 출고 시점부터 3~4개월 후 대금 지급이 가능한 외상거래를 빈번히 하는데 최근 외상거래로 회사의 자금 회전이 빡빡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금류를 가공하는 D사 대표도 납품 대금 회수 기간이 길어지고 있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는 “유동성에 영향을 받고 있어 자금 확보를 위해 현물매각도 고려 중에 있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출연장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광통신모듈을 생산하는 E사 관계자는 “경제위기의 징후가 보일 때마다 금융기관들은 대출자금 조기상환을 요구하고 있다”며 “경제위기 때면 오히려 대출기간을 연장해 주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폐열회수용 설비기기 S사 관계자는 어음제도 폐지를 통해 연쇄부도를 막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IMF 때 10억 부도를 맞아서 고생을 했다”며 “어음거래를 하다 연쇄적으로 도산하면서 선의의 피해를 보는 이가 많은 만큼 어음을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현재 대출연장을 거부하거나 추가담보를 요구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다”며 “향후 실물경기 위축에 따라 매출 등이 감소할 경우 기업들의 자금순환이 경직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주거래은행과 중소기업은 공생관계”라며 “기업의 경영상황과 자금수요 등을 사전에 같이 점검해 가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해결책을 찾아야한다”고 조언했다.
□심화되는 인력난=자금난과 함께 중소기업의 큰 골칫거리는 인력난. 지난 8일 둘러본 수도권 공단에도 20대의 젊은이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A 중소기업 대표는 “2·30대는 물론이고 40대의 엔지니어도 찾기 힘든 상황이다. 우리 회사도 최근 정년이 된 직원이 2명이 있는데, 쉬고 싶다는 직원들을 설득해 계속 일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다른 중소기업 대표는 일할 사람이 없어 기계도 멈추고 외주제작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신입사원 모집 공고를 냈다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2주일째 원서 한 장 못 받았다고 하소연 했다.
그는 “최근 시에서 공단을 살린다며 주변 버스노선을 확대해 교통도 눈에 띄게 좋아졌지만 채용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유용하게 활용하던 외국인 노동자도 좋은 일자리에만 몰리는 현상이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대책은 없나=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우리 경제가 비교적 견고한 만큼, 글로벌 재정위기 우려에 대해 시장의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금융시스템을 수시 점검하고 위기관리를 철저히 하되, 국내경기가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지 않도록 안정에 힘써야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중소기업들은 원부자재 수급 및 가격상승, 자금 조달과 관련해 경영애로를 겪고 있는 만큼, 원부자재 가격 안정화, 원부자재 상승에 따른 납품단가 반영, 금융권의 중소기업 자금지원 확대 및 심사기준 완화, 외국인력 확대공급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장 인터뷰]

“올 겨울 무척 추울 것”

“다음달이면 연말입니다. 즐거워야 할 연말 연시에 직원 해고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수도권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김모(62세)사장은 일감을 찾지 못해 최근 고민에 빠졌다.
자동차 부품 3차 벤더지만 이번 달 발주물량이 마지막 일감이기 때문이다. 예년과 비교해 봐도 30%~50% 정도 일감이 줄었다는 게 김 사장의 말이다. 직원도 10명에서 벌써 3명을 내보냈다. 오전에는 일하지만 오후에는 기계를 멈춘다. 오전근무 하던 토요일도 일감이 없다보니 쉰다. 어쩔 수 없이 주5일제가 돼 버렸다.
김 사장은 최근 경기상황을 2008년과 비교해 볼 때 더 어렵다고 밝혔다. 신규 발주는 거의 없고 자금수요가 몰리는 연말이라 어음결재인 경우 선뜻 나서기 어렵다는 게 요즘 분위기라고 귀띔한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바쁘다고 하지만 대부분 과장된 경우가 많습니다. 일 없다고 소문나면 은행에서 대출금 회수에 나서고 거래처로부터 신뢰를 잃기 때문입니다. 애써 바쁜 척을 하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는 “수십년 사업을 해왔지만 올해 겨울이 무척이나 추울 것”이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이달 초 점심을 제공하던 한 업체가 문 닫았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앞으로 식당손님이 줄 것도 문제지만 넉달치 밀린 밥값 7백만원도 못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업체 대표가 전화도 받지 않아 돈 받기는 포기했지만 앞으로가 더욱 문제라고 말했다.
김 씨는 “남동공단에서 식당을 운영한지 10년이 되어 가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밥값을 못 받은 적이 없었는데 경기가 어렵기는 한 모양이다. 다른 기업들도 정산일이 5~6일씩 늦어지고 있어 더 걱정이다. 물가가 아무리 올라도 공단 내 기업들이 사정 안 좋다는 소문에 3500원에서 점심 값도 올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나마도 못 받을까 최근 잠이 잘 안온다”고 말했다.
2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씨는 저녁장사를 하지 말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잔업을 하는 직원들을 위해 저녁을 항상 70명 이상으로 준비해놓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20~30명밖에 찾지 않아 인건비도 안나온다. 기업이 바쁘고 공장이 잘 돌아가야 야식을 많이 먹는데, 최근에는 손님이 없으니 우리 매출도 크게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완신·손혜정기자

-지난 8일 인천 남동공단도로에서 일감을 찾지못한 화물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는 설비투자 감소와 건설경기 불황에 따라 연관 업종의 일감이 줄었기 때문인 것으로 공단 관계자는 전했다. <손혜정기자>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