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이면, 웬지 겨울 바다가 그리워지곤 한다. 강릉 바다. 여행을 즐기지 않은 사람들이거나 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들도 바다가 보고 싶을 때면 떠올리는 곳이다. 요새 여행지에서는 지나치는 차량도, 관광객들도 많지 않다. “여행은 이럴 때 해야 해”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경포대, 안목항 바닷가를 돌아보고, 강릉에서 새로 만들어놓은 ‘바우길’의 송림 숲도 잠시 걸어보면서 동해로 발길을 옮긴다.

동해안을 따라 간다. 내눈 속에 바다를 짚어 넣고 달리는 기분이 싱그럽다. 횟집, 식당들이 연이어진다. 간판을 새로 바꾸었는지 거리 분위기가 깔끔하다. 도로변 바닷가쪽에 왜구를 물리쳤다는 호국 문어상과 그 옆에 까막바위가 있다. 까막바위 굴에는 문어의 영혼이 산다고 해 해녀들도 다가가지 않는단다. 내쳐 묵호항 쪽으로 달리다가 묵호등대에 오른다.
등대는 묵호동 산중턱(해발고도 67m)에 위치하고 있다. 앞이 훤히 트여 바다도 보고 형형색색으로 물들은 지붕과 멀리 항구까지 조망된다. 등대주변에는 바다의 수호천사를 상징하는 ‘천사날개 포토존’과 불꽃을 형상화한 조각 작품,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시구가 새겨진 소공원,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과 몇 편의 드라마를 이곳에서 찍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등대 나름 유명하거든”이라고 말하는 듯 싶다. 등대 안의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전망대가 있고 등대 바로 밑에 커피숍도 들어섰다.
등대를 기점으로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드라마 촬영지였다는 출렁다리쪽으로 가서 어달리로 내려가게 된다. 또 등대 주변에 논골 돌담길이 있다. 난 기억한다. 묵호등대에서 바라본 야경을. 어둠이 내리고 묵호시내의 집들에서 하나둘 불빛이 켜지고 있을 즈음, 등대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배회했었다. 인기척이 느껴졌고 한 할머니를 조우했다. 항구까지 가파른 길을 걸어 오르내리면서 늙어가 버린 삶을 말해야 알겠는가? 좁은 골목길을 무수히 오르고 내리고 했을 그 길을 따라 걸어본다.
슈퍼 옆에 ‘논골담길’ 안내표시가 있다. 몇해 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연합회에서 실시한 ‘논골담길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다. 스케치는 미대생 출신들로 구성된 ‘공공미술 공동체 마주보기’ 회원들이 채색은 60~70대의 마을 노인들이 맡았다고 한다.
골목마다 심심치 않게 벽화가 그려져 있다. 결코 유치하거나 조악하지 않다. 바닷가 마을의 특징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벽화들. 생선, 오징어, 커다란 봇짐을 짊어진 할머니, 앙증맞은 소녀의 분홍신, 개구멍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누렁이 한 마리, 하얀 물보라를 만들며 거센 파도를 헤쳐 가는 고기잡이 배 등. 마을 고샅길과 너무나 잘 어우러져 있어 첫눈에도 반한다. 뜬금없이 물길을 만난다. 김장을 하는지 길은 온통 물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가파라서 멈출 수 없는 물줄기다. 길목에서 오랫동안 이 동네를 지키고 살아온 할머니도 만나지만 애써 긴 이야기는 나누지 않는다. 시집와서 평생 그 자리에서 얼굴에 주름 만들면서 살아왔던지, 모진 풍파에 이곳에 와서 터전을 잡았든지. 모두다 그렇게 살다 가는 것이지. 사연 가득 안은채로 살다 가는 것이지.
골목은 길지 않다. 이내 찻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논골 갤러리(논골3길)를 만난다. 빈집에 크고 작은 그림들을 그려 넣었다. 밤바다에 촘촘히 불을 밝히고 있는 오징어잡이 배, 불덩이처럼 솟아오르는 태양과 흰 날개를 편 갈매기들, ‘묵호벅스’까지 액자 안에 풍경들이 담겨 있는 그 자리엔 인기척은 없다. 논골 벽화 마을. 바닷가 향기가 그득찬 곳. 한평생 바다와 함께한 마을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는 곳. 유행처럼 번지는 벽화마을 중에서도 특색을 잘 갖추고 있어 좋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어시장을 찾는다. 아침에만 반짝 시장이 서는 게 아니라 이제는 아예 상설이 된 듯하다. 늦은 시간까지 어시장이 서고, 싱싱한 횟감을 구입한 사람들의 횟감을 떠주는 할머니들의 손짓이 부산하다. 오징어 먹물이 마를 날이 없었었다고 붙여진 지명 묵호동. 인근 어달리와 대진리를 합친 행정 구역명인데 주민들은 아직도 ‘묵호진동’이라고 부른다.
어시장을 뒤로 중앙시장으로 향한다. 꼬마김밥도 사먹고 야채 듬뿍 들어간 김밥도 또 사먹는다. 시장통을 돌아다니는 것은 정체된 삶에 활력을 실어주기에 행복하다. 푸짐한 해물탕을 앞에 두고 주리지도 않은 배를 또 채우고 채우는 것은, 가슴 속 깊이 스며 있는 외로움을 채우고 싶은 욕망이었으리라.

여행정보

○ 주소 문의전화
묵호등대 : 동해시 묵호진동 2-215, 033-531-3258, 중앙시장:동해시 발한동 7-5, 033-532-3889, 상인회:033-534-1580
○ 찾아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강릉분기점→동해고속도로→망상 나들목→묵호 방향→묵호항 순으로 간다. 논골담길은 선어판매센터에서 북쪽으로 300여m 가면 나온다. 묵호등대로 곧장 가려면 일출로에서 논골3길 방면으로 좌회전한 뒤 묵호동주민센터를 끼고 우회전해 곧장 가면 된다. 등대에서 걸어내려오는 것이 수월하다.
○ 추천 별미집 : 어달리쪽에 있는 선창횟집(033-531-5861, 활어회 등, 어달동 7)은 대기업 수준의 횟집이다. 주인이 정치선을 갖고 있어서 싱싱한 제철회를 즐길 수 있다. 망상해변에 해돋이식당(033-534-3773, 조개탕, 망상동), 칠형제곰치국(033-533-1544, 어달동), 동해바다곰치국(033-532-0265, 어달동)가 칠형제는 밑반찬이 실하고 동해바다는 곰치국이 시원하다. 동해보양온천컨벤션호텔(033-530-0700)의 황태전골의 조식도 괜찮다. 황태를 한번 기름에 튀긴 것이 특징이고 심층수를 이용해 만든 두부 맛이 고소하다. 중앙시장에 있는 삼삼해물탕(033-532-5505, 해물찜)은 푸짐한 해물찜을 먹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시장통내에는 먹거리가 즐비하다.
○ 숙박정보 : 망상해변에 있는 동해보양온천컨벤션호텔(033-530-0700)은 온천욕과 숙박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야외결혼식과 수영장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 외 묵호항 인근 동해관광호텔(533-6035)등을 비롯해 모텔 펜션이 여럿 있다.

■이신화 http://www.sinhwad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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