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지난 1999년 유럽 단일통화 ‘유로’를 출범시키고 역내 무역과 자본, 그리고 인력이동의 자유화를 꾀하며 경제공동체를 넘어 완전한 통합을 위해 전진하던 유럽이 흔들리고 있다. 유로 존의 붕괴를 점치는 의견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아메리칸 드림’을 대체할 수 있는 가치로서 ‘유러피언 드림’은 이제 끝났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적 통합에는 진전을 이뤘지만 정치적으로 통합되지 않는 한 유럽의 통합이나 세계 속에서의 위상은 이번 위기로 드러나는 것처럼 더 이상 강화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러피언 드림’이란 경제학자이자 문명 비평가인 제레미 리프킨이 그의 2004년 저서 ‘유러피언 드림’에서 주창한 가치이다. ‘유러피언 드림’이란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동체 내의 관계, 획일적인 동질화보다는 문화적 다양성, 부의 축적보다는 삶의 질, 무제한적 발전보다는 환경보존을 염두에 둔 지속가능한 개발, 직장생활도 무자비한 노력보다는 온전함을 느낄 수 있는 ‘즐거운 놀이’가 되야 한다는 것이고, 재산권보다는 보편적인 인권과 자연의 권리, 일방적 무력행사 보다는 다원적인 협력을 강조하는 태도를 말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개인의 물질적 출세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리스크, 다양성, 상호 의존성이 증가하는 세계에 걸 맞는 폭 넓은 사회복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서부 개척시대의 사고방식에 젖은 케케묵은 꿈이기 때문에 오래전에 폐기되었어야 했다고 리프킨은 지적했다.
금융 위기 초기 ‘유러피언 드림’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영미식 자본주의의 특징이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때문에 유럽식 자본주의와 ‘유러피언 드림’이 지닌 대안적 가치가 더욱 빛나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정적인 줄 알았던 유럽식 자본주의도 금융위기를 비껴가지 못했다. 2010년 이후 금융위기 확산의 진원지는 유럽이었다. 그리스 뿐 아니라, 스페인, 이탈리아, 아일랜드, 심지어는 프랑스 또한 과연 향후 재정적자를 적절하게 관리할 수 있을 지에 대한 회의가 꼬리를 물었다. 독일이 위기를 잠재우기 위한 노력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유럽합중국 태동의 가능성이 멀었다는 것을 암시해주었다.
하지만 이번 금융위기로 유러피언 드림의 현실 가능성이 없어졌다거나 유럽식 자본주의가 근본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자본주의 모델은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 성장 및 효율과 복지, 통합을 통한 개방에의 대응 등 세계 시장의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키워왔고 이들 국가들은 이번 금융위기에도 잘 버티고 있다.
또한 유럽 발 재정위기는 그들 국가들의 고유한 문제라기보다는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확대된 세계적인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에 대한 불안함이 약한 고리를 찾아 분출되고 있는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국제금융시장은 금융위기 이후 후폭풍으로서 취약해진 국가재정에 대해 종합적인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과도하게 각국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취약 국가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자본주의와 관대한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유럽식 자본주의와 유러피언 드림은 향후에도 존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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