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각국이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지혜 모으기 바쁜 이 때 늘 비협조적으로 딴죽을 거는 국가가 있으니 바로 영국이다. EU 27개국 중 3번째 경제대국이 이러한 태도를 보이니 다른 회원국들 입장에서는 참 야속할 노릇이다.
얼마 전에는 新재정협약을 합의하기 위해 유럽 정상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영국 카메론 총리만 반대를 하다가 눈총을 받기도 했다. 유럽 재정위기를 계기로 점점 EU에서 멀어져가는 영국의 속사정은 무엇일까?
영국 파운드화 지폐의 앞면에는 최근 즉위 60주년을 맞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진이 뒷면에는 뉴턴, 다윈, 찰스디킨스, 셰익스피어, 아담스미스 등 영국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아담스미스의 후예답게 지나친 규제에 대한 거부감도 심해 영국인들은 브뤼셀의 EU를 유로와 뷰로크라시(관료주의)의 합성어인 ‘유로크라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파운드를 버리고 유럽 대륙식의 건축물만 덩그라니 있는 ‘유로크라시’ 유로화를 쓰는 것은 아직까지 영국민들의 정서로는 용납하기 힘든 일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카메론 총리가 新재정협약에 대한 반대로 유럽은 물론 국내 정치권으로부터 심하게 비난을 받을 때에도 총리의 행동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62%에 달하기도 했다. 반면 '반대한다'는 의견은 19%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영국이 처음부터 유로화에 선을 그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영국은 1990년 10월부터 환율조절메커니즘(ERM)에 참여한 사실이 있다. ERM은 유로화 구축을 위한 과도기적 조치로 느슨한 수준의 고정환율제를 말한다.
하지만 1990년 10월 동서독 통일로 독일의 물가가 급격히 상승하자 영국이 후폭풍을 맞는다. 독일 중앙은행이 금리를 급격히 인상하자 높은 금리를 주는 독일로 대규모 자금이 몰렸기 때문이다. 영국에 있던 자금도 급격히 빠져 나간다. 설상가상으로 투기 세력들까지 가세해서, 파운드를 마구잡이로 팔았다.
결국 영국은 투기세력의 대규모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1992년 9월 ERM을 포기하게 된다(검은 수요일). 영국에겐 아직 구축되지도 않았던 유로화에 대해 트라우마만 남은 셈이다. 영국이 유로화 통합 강화에 적극성을 보일 수 없는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영국경제에서 금융산업이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이다.
금융산업은 영국 GDP 약 14%를 차지하며 금융권 종사자들이 총 소득세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를 넘는다.
또한 런던 경제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현재 유로존이 추진하고 있는 각종 정책들은 금융산업의 번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일례로 금융거래세가 적용될 경우 런던의 금융기관들이 세금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 영국 금융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해 볼 때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위협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은 향후에도 유로존에는 가입하지는 않지만 EU 회원국으로 계속 남아서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행태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는 유럽 재정위기 해소에 또 다른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런 만큼 향후 EU 내에서 영국의 행보와 독일, 프랑스 등 라이벌들과의 관계를 주의깊게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종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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