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칼의 노래>로

김훈은 나이 쉰이 다되어서야 소설을 쓰기 시작한 늦깎이 소설가다. 그는 1948년 서울 종로구 청운동 태어나서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했으나 집안 형편상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 중퇴했다. 대학을 중퇴한 김훈은 군대를 다녀와서 입사지원 자격이 ‘고졸’이었던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그런데 면접에서 학력이 문제가 됐다. 지원 자격을 ‘고졸’로 했을 뿐 대학졸업을 하지 않은 사람이 입사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장기영 한국일보 회장이 소설가로 유명했던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를 잘 알던 터라 그는 다음날부터 출근을 할 수 있었다.
그 후로 김훈은 27년간 기자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의 직장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시사저널, 국민일보, 한겨레신문 등을 거치면서 마지막 직장을 떠날 때까지 그는 7번 직장을 옮겼으며, 20번에 가까운 사표를 냈다. 그래서 그런지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글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2000년 3월, 김훈은 <한겨레21>의 ‘쾌도난담’ 인터뷰에서 페미니스트를 비하하는 마초적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고 시사저널 편집장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그가 사표를 쓰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시사저널>을 그만둔 뒤 김훈은 자기를 비난하는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홀로 만인과 싸우는 기분으로’ 소설을 썼다. 그것이 바로 <칼의 노래>이다. 김훈은 <칼의 노래>를 3개월 만에 썼는데 그 동안 8개의 이빨이 빠졌다. 그만큼 혼신의 힘을 다한 이를 앙다문 작업이었나 보다.
원래 김훈은 70∼80년대에 글 쓰는 재능이 뛰어난 신문기자로 유명했다.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김훈의 문학기행’은 그의 빼어난 문장력을 보여주는 압권으로 독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는 40대 후반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소설을 쓸 용트림을 시작했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첫 작품이 <칼의 노래>이다. 이 작품으로 그는 단번에 ‘동인문학상’을 거머쥐고 가장 주목 받는 소설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독자들은 김훈이 창조한 인간 이순신에 매료되어서 <칼의 노래>는 백만 권 이상이 팔려나가 ‘밥벌이의 지겨움’을 잊을 수 있게 해주었다.
<칼의 노래>에 등장하는 이순신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위대한 장군의 모습이 아니다. 작가가 그리는 이순신은 애국심의 화신이나 구국의 영웅이 아니라 실존적 고뇌를 지닌 절망과 불안에 휩싸인 일반인과 다름없는 인간 이순신이다. 고독을 씹어가며 백의종군을 하면서 나라의 운명을 한 몸에 지고 있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에서 고독한 작가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칼의 노래>를 읽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노무현은 이순신처럼 ‘고독한 실존주의자’로서의 모습이 각인 되었다. 1인칭 서술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정치와 권력의 폭력성과 한 나라의 명운을 짊어진 인간 이순신의 고뇌를 오롯이 드러내준 김훈 특유의 상상력과 문체가 독자들의 혼을 책 속으로 불러들인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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