숀 펜을 위한, 숀 펜에 의한, 숀 펜의 영화

영화와 원작 소설을 비교하며, 영화는 결코 문학의 상상력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비판하는 이들을 흔히 보게 된다. 문자 세대 지식인의 문학 편애를 충분히 이해하며, 문필가의 노고와 업적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단정은 문학과 영화가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별개 예술 장르이며, 각각의 장단점이 있음을 간과한 오판/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주제, 줄거리, 문체 전반으로 문학 작품을 평가해야하듯이 영화 또한 영상미, 배우의 연기, 의상, 미술, 음악 등을 종합한 다면 평가가 마땅하다.
타셈 싱의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2006)의 미술, 의상, 영상미는 문학작품이 넘볼 수 없는 경이로운 세계이며, <아버지를 위한 노래>(2011)에서의 숀 펜의 연기는 어떤 문필가도 묘사할 수 없는 위대한 경지라고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위한 노래>는 숀 펜을 위한 숀 펜에 의한 숀 펜의 영화로, 118분 상영 시간 동안 그가 나오지 않는 씬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이전 출연작에서도 등장 그 자체만으로 숨 막히는 순간이 많았지만, <아버지를 위한 노래>에서 숀 펜은 가만히 관객을 응시하는 것만으로 내면의 고통과 억압, 상처, 슬픔을 넘치게 전달한다.
물론 캐릭터와 연기를 돕는 분장과 의상도 칭찬해야 마땅하다. 짙은 눈 화장과 새빨간 립스틱, 흰 분의 메이크업과 잔뜩 부풀린 펑키한 머리 스타일은 이마의 주름과 투명한 파란 눈을 두드러지게 하면서, 몰락한 광대 이미지를 강조한다. 팔찌와 목걸이 등의 장신구와 검고 긴 코트와 부츠 차림으로 구부정하게 걸으며 느릿느릿 툭툭 내뱉는 과묵한 어투는, 자기 안에 갇힌 인물과 그 심연으로부터의 탈출 의지를 보여주는 데 효과적이다. 이 모든 치장을 걷어낸, 영화 마지막의 평범한 중년 남자로의 귀환이 아쉬울 정도지만, 그 장면에서조차 숀 펜의 희미한 미소는 카타르시스와 행복감으로 증폭된다.
<아버지를 위한 노래>는 숀 펜의 존재감과 연기력, 분장이 워낙 압도적이어서 이야기의 무게감, 의외의 전개와 유머, 개성 있되 튀지 않는 조연 캐릭터와 연기력, 담백한 전개를 잊게 만드는 멋진 카메라 움직임과 영상미, 모던하면서도 심플한 노래들, 로드 무비와 성장 영화로서의 장점 등이 간과되는 측면이 있다. 20세기 초 이탈리아 정계를 호령했던 실존 정치인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을 토니 세르빌르의 빼어난 연기와 입체적 구성, 블랙 유머로 그려낸 수작 <일 디보>(2008)로, 침체에 빠져있던 이탈리아 영화계를 구원할 감독으로 떠오른 파울로 소렌티노로서는 다소 섭섭할 수 있겠다.
그러나 숀 펜과 같은 세계적인 스타가 과거의 약속을 잊지 않고 출연해주었으니 연출력이 다소 묻히는 것을 불만할 수 없겠다. 숀 펜이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던 2008년, 소렌티노 감독은 <일 디보>로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숀 펜은 소렌티노 감독에게 함께 일해보고 싶다고 했단다. 숀 펜이 <아버지를 위한 노래> 시나리오를 받고 하루 만에 오케이 했다니, 직접 시나리오도 쓰는 소렌티노 감독의 재능과 서로의 재능을 알아보는 예술가의 공동 창작이 부럽기만 하다.

- 옥선희 영화칼럼니스트 eastok7.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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