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농부의 작업실’, 카트로 만든 화분도 선보여

봄꽃이 유독 사랑받는 건 겨울의 황량함 뒤에 오는 화사함 때문일 것이다. 난로를 들여놓자마자 선풍기를 내놓아야할 정도로 봄이 짧아진 탓에, 꽃들이 계절을 혼동하여 한꺼번에 피었다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제 순서를 지키려는 식물의 안간힘을 읽을 수 있는 봄이 가고 있다. 매화, 산수유, 벚꽃, 목련, 모란이 며칠 간격으로 피었다 지고 있는 걸 보면.
질서를 지키려는 꽃나무들의 노력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제멋대로 조경하는 게 더 큰 문제이지 싶다. 전통한옥을 재현해 놓았다고 자랑하는 남산 한옥마을은 입구부터 원색의 튤립이 몸을 흔들고, 장독대 옆에도 관공서에서 즐겨 심는 ‘구청 꽃’인 팬지가 눈을 어지럽힌다. 도시 환경을 미화한다고 내놓은 광화문 광장 화분에도 꽃의 종류나 키, 색의 조화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원색의 서양꽃 범벅이다. 초등학생들도 ‘(색)깔맞춤’ 옷차림을 하는 데 나라 한복판을 가꾸는 이들의 조경 수준이 이러하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옥상 정원, 손바닥 공원, 텃밭, 베란다, 화분에 무엇을 어떻게 심고 가꾸는 게 좋은지, 심미안을 갖추고픈 이들에게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운영하는 KCDF갤러리(02-743-9092)에서 열리고 있는 ‘도시농부의 작업실’(20일까지)전을 권한다.
나무, 꽃, 채소를 키우는데 햇빛, 바람, 물, 비료만 있으면 되지 무슨 심미안이 필요한가 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꽃과 나무가 그 자체로 완벽한 자연이고 생명체이기에 화분, 주변 식물과의 조화 등이 틀어지면, 즉 미의식이 결여된 이가 손을 대면 아니 심은만 못하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 완벽한 생명체를 심고 가꿀 자격이 생긴다. 그래서 디자인을 추구하는 기관에서 ‘도시 농부의 작업실’전을 여는 것이리라.
전시회는 주변 환경을 자연친화적으로 가꾸고 스스로 가꾼 채소를 먹고자하는, 콘크리트 건물에 사는 도시인을 위해 기획되었고 작업실, 마켓, 배움터로 나누어졌다.
작업실은 흙과 퇴비, 짚을 이용한 텃밭, 베란다 활용, 옥상 정원, 이동형 텃밭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윈도우 갤러리의 흙과 퇴비 연구실은 커다란 푸대와 심플한 작업대, 원예용구를 전시해놓았다. 짚을 이용한 텃밭에는 헬멧, 나무상자, 솥단지, 양푼 등에 식물을 심고 주변을 짚으로 장식했다. 벽돌이나 작은 나무 울타리만을 생각하는데 이처럼 짚단으로 테두리를 만드니 목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심지어 대형마트 카트의 가장자리에 짚을 깔고 화초를 심는다든가, 고무장갑에 흙을 채워 식재하는 등, 폐품 활용의 예를 많이 볼 수 있는데 망가진 기물이나 공산품을 활용한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드는 것은 화초와 주변 장식과의 조화를 꾀한 덕분이다. 베란다는 커다란 나무 상자 몇 개를 이용하여 통일감을 주었고, 모던한 디자인의 테이블과 의자를 두어 카페 분위기를 냈다.
옥상정원은 허브, 채소 등의 식용 식물을 크기와 색깔 등에 따라 나누어 심고 지붕에는 넝쿨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줄을 매 둔 ‘키친 가든’을 의도했다. 두툼한 볼륨감이 느껴지는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간이 수도 시설, 커다란 나무 상자에 바퀴를 달고 유리문을 달아 겨울에는 온실처럼 활용할 수 있게 한 화분 등, 쉽게 빌려올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았다.
마켓에는 젊은 공예 작가와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펠트와 가죽으로 만든 가드닝 작업복과 바구니, 화분을 내놓은 작가가 있는가 하면 꽃삽, 갈고리, 원예 가위를 주렁주렁 매달아 샹들리에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실생활에 쓰이는 용구와 예술이 따로 떨어진 이질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준 작가도 있다. 모종삽, 토분, 갈고리 등의 원예용품에 천연 옻칠을 하여 친환경을 강조한다든다, 철판에 가죽 손잡이와 원목 상판을 댄 수레 등 젊은 작가들이 도시 농부를 위해 만든 아이디어 작품들을 사고픈 욕구를 누르기 힘들다.
도시농사의 모범을 보여주는 이들을 인터뷰하며 식재의 예를 보여주는 영상물에서는 “많이 심으려 욕심 내지 말고 간격을 두어 숨통 트이게 하며, 색채 대비도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국내외 정원 관련 서적과 정기간행물, 천 소재로 화분 만들기 이벤트 등 배움터에서도 한참 시간을 보내게 된다.
베란다에 상추, 고추, 가지 등의 모종을 심은 우리 모두 도시 농부다. 농약 안친 채소를 식탁에 올리는 실용성만 생각하지 말고 화분, 식물 배치, 주변에까지 신경을 써서 농사를 디자인과 예술로 승화시키는 나만의 손바닥 농장을 만들어보자.

옥선희 대중문화칼럼니스트 eastok7.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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