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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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시이야기]
  • 중소기업뉴스
  • 호수 1881
  • 승인 2012.05.2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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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을 살아온 집의
문고리가 떨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열고 닫았던 문
헛헛해서 권태로워서
열고 닫았던 집의 문이
벽이 꽉 다물렸다
문을 벽으로 바꿔버린 작은 존재
벽 너머의 세상을 일깨우는 존재
(중략)
언젠가 나도 명이 다한 문고리처럼
이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것이다
나라는 문고리를 잡고 열린 세상이
얼마쯤은 된다고 믿을 수만 있다면!

내가 살기 전에도
누군가가 수십 년을 살았고
문을 새로 바꾸고도 수십 년을
누군가가 살았을 이 집에서
삭아버린 문고리
삭고 있는 내 몸
-조은 「문고리」중에서-


그랬다. 어느 날, 문고리가 ‘툭’하고 떨어지고 말았다. 문고리라는 작은 존재가 사라짐으로 인하여 문이 벽으로 바뀌고 안쪽과 바깥쪽의 통로가 없어져 소통의 단절을 가져온 것이지요. IT산업의 발전으로 인터넷과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소통수단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지만 미래학자 미국의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그의 저서「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인터넷이 사색의 시간을 빼앗아 인간의 뇌 구조를 바꾸고 사고를 제한하고 있어 오히려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한 인터넷과 SNS가 인간이 마주보며 대화하는 기회를 감소시켜 눈빛과 가슴으로 나누는 감성교류와 감정공명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어느 날, 문고리가 문의 개폐역할을 상실한 채 인간을 향하여 벽을 만들고 나뒹굴고 있습니다.
시골의 오래된 가옥에서 살고 있는 할아버지가 문고리에 숟가락을 꽂아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방안에서 문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농사일을 나가시는 다큐멘터리 영상이 생각납니다. 부뚜막에 굴러다니던 낡은 숟가락 하나가 잠금장치의 기능을 얼마나 할 수 있겠습니까? 힘으로 밀어붙이면 어렵지 않게 열리겠지만 노부부에게 동그란 문고리는 가슴으로 통하는 소통의 원(圓)이며 신뢰의 상징이지요. 그 문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통로이면서 또한 벽입니다. 문 안쪽의 할머니는 망각의 세계를 항해하고 있고 문 바깥쪽 할아버지는 땅을 파고 씨를 뿌리는 현실 세계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문고리를 매개로 하여 소통하는 것이지요. 문 안쪽은 번뇌를 벗어난 진계(眞界)이고 문밖은 속계(俗界)라는 일주문(一柱門) 같다고 할까요.
생명체와 물질계의 존재, 그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광채 나는 값비싼 문고리도, 누옥의 작고 낡은 문고리도, 주인의 슬픔과 기쁨을 흔들어 주던 문고리도 ‘언젠가 명이 다하여’ 삭아버려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벽만 홀로 남게 될 때, 그제야 벽 너머의 세상을 깨닫게 되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지요. ‘내가 살기 전에도 누군가가 수십 년을 살았고, 문을 새로 바꾸고도 수십 년을 누군가가 살았고’ 앞으로 더 오래도록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문고리를 없애기도 하고 벽을 만들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마음의 소통과 사랑의 전이는 가소성이 있어 낡은 문고리처럼 쉽게 떨어지거나 깨지지 않습니다. 꽉 다물었던 벽은 이내 몸을 돌려 문고리를 내어주고 문을 활짝 열어젖혀 출렁거리는 5월의 초록빛 함성을 받아들여 줄 것입니다.

글·시인 이병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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