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까지 나는 할 수 없이누이들과 함께 어머니 손을 잡고 여탕엘 들어가야 했다
(중략)
그때마다 혼자서 원망했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
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
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 온 뒤의 일이다
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
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
적막하디 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

- 손택수 시 「아버지의 등을 밀며」중에서 -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 아버지의 숭고한 사랑을 이보다 더 어떻게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어느 초등학생이 썼다는 글 한편 소개합니다. /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예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여러분은 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요?
세상 아버지들은 스스로 고삐를 끌어당기고 살아가며 그 멍에의 흔적조차 감추고 살아가지요. 식솔을 부양하는 삶의 무게를 걸머지고 ‘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의 마지막이 결국은 의식을 잃고 실려 간 병원이었습니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 남자는 울지 말아야 한다’ 라는 말을 되뇌며 살아오신 아버지는 ‘등짝의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끝내 밖으로 내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어린 자식들의 원망이 두려워서가 아니고, 아버지 자신이 용납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도 걸음마를 배우고 코흘리개를 거치고 사랑하는 사람과 산으로 바다로 놀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왜 까마득히 잊고 사는 걸까요?
아버지 등에 생긴 지게자국은 강요된 한 자연인의 상처가 아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훈장이며 감동적인 한편의 인간사입니다.
사냥으로 생활하던 수렵시대에는 맹수와 싸워야 했고 봉건주의사회에서는 힘든 육체노동을 이겨내야 했고 무한경쟁의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등이 휘는 경제적 압박에 시달려온 아버지들입니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어쩌다 집안에서 큰소리 한번 칠라하면 권위적인 아버지로 치부하며 마초이즘(Machoism:남성우월주의)에 빠진 전근대적인 가장이라고 매도당하기 일쑤입니다. 후회스럽게도 필자는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린 기억이 없습니다. 이미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린 적 있으신지요? 오늘 아버지께 전화라도 한번 하시지요. 미루지 마시고 지금 바로…

(글.이병룡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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