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로마를 방문하던 중에 타계한 폴 얀센 박사는 얀센 제약의 창업자로 평생을 의약품 개발에 전념해 온 과학자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자로 평가받는 얀센 박사는 정신의학, 마취와 통증관리, 균학, 위장병학 등의 질병분야에서 가장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창업 이후 30여년간 80여종의 신약을 개발해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해 왔다. 또한 그는 노구에도 젊은 연구원들과 함께 실험실 한구석에서 연구개발에 몰두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로지 인류를 질병에서 구해내기 위해 실험실과 제약공장 현장에서 일평생을 바친 그의 철학이 지금도 많은 후배 과학자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다.
1928년 세균학자인 알렉산더 플레밍은 곰팡이로부터 병원균을 죽일 수 있는 페니실린을 찾아냈다. 하지만 실제 치료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의 페니실린을 만들지 못해 단순한 실험 성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1941년 컬럼비아대학 연구원들이 페니실린의 전염병 치료 효과를 보여주는 심포지엄에 화이자의 존 데이븐포트와 고든 크레그월이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되어 화이자가 페니실린의 대량 생산방법 개발 경쟁에 참여하게 됐다.
화이자는 컬럼비아대학팀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후 3년 동안 회사의 모든 자원을 투입해 페니실린 항생제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 성과를 발판으로 세계 최고의 제약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1876년 영국의 내과 의사인 조셉 라스터 박사가 미국의 필라델피아 의사회에서 수술실의 위생상태에 중점을 둔 세균감염에 대해 강의를 했다.
이 강의 주제는 당시의 의료계에서 공기 중의 세균 감염에 따른 환자들의 건강에 대해 별 비중을 두지 않았던 지론에 일침을 가하는 혁신적인 내용이었다. 라스터 박사의 주장에 동의한 로버트 우드 존슨이 면과 거즈를 이용한 수술용 붕대를 개발함으로써 오늘의 다국적 제약기업 존슨 앤드 존슨이 탄생할 수 있었다.
바이오제약기업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암젠사는 1980년 세 명의 과학자가 창업한 실험실 벤처로부터 시작했으나 신약개발을 통해 지금은 세계 최대의 바이오제약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처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글로벌 제약기업은 과학적 혁신과 창조적 가치를 바탕으로 창업됐거나 성장했으며 질병과의 전쟁에서 항상 선봉에 서 왔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혁신형 제약기업 43곳을 선정해 발표했다. 신약 개발과 해외진출 역량이 우수하다고 인증을 받은 기업은 앞으로 3년간 국가연구개발사업 우선 참여, 금융 및 세제지원, 약가 우대 등 각종 혜택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증제도가 우리의 제약기업들이 글로벌 제약기업으로 도약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현재 제약기업들은 약가 일괄 인하, 리베이트 근절, 한미 FTA 체결 등으로 최대의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국내 제약기업의 역사가 100년이 넘었고 제약기업 수는 500여개에 달하지만, 그 규모가 너무 작아서 매출 1조원을 넘는 기업이 한 곳도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국내 10대 제약기업 모두의 연구개발 투자비를 합해도 미국 화이자의 2% 수준밖에 안 되는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신약개발 경쟁에서 멀찌감치 밀려나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제약기업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신약개발능력을 강화하며 성장하고 있을 때 우리의 제약기업들은 글로벌 제약기업의 신약이 특허가 종료되기를 기다렸다가 복제약을 만들어 단기적인 매출을 올리는데만 급급해 왔다.
선진국의 글로벌 제약기업들 또한 성장을 위해 경쟁해 나가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상업주의가 팽배해져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글로벌 제약기업이 탄생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과학적 혁신과 창조적 가치가 그 기초를 이뤘으며, 이를 통해 인류사회에 이바지한 부분은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제약기업들이 추구해야 할 방법과 목표 또한 여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나라의 제약기업 중에서도 과감한 투자와 혁신적 신약개발을 통해 질병과의 전쟁에 앞장서고,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얀센 박사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참된 제약기업의 출현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김경수
㈜셀트리온 화학연구소 대표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