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이정록 시 「의자」전문 -

뉴턴의 제3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과 상관없는 것이 의자입니다. 의자는 자신에게 무게가 가해져도 반작용의 힘으로 맞서지 않고 그 무게를 감싸 안아줍니다. 키 작은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주어 발판이 되고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 체온으로 덥힌 자리를 내어주고 삶에 지친 사람에게는 그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는 쉼의 공간을 마련해주지요.
의자는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의 명소 중에 한쪽 다리가 부서진 커다란 의자 조형물이 놓여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균형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율배반적으로 의자의 영어단어를 사용하는 체어맨(Chair man)은 최상위의 권좌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지요.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였겠지만, 우리는 살아오면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기도 하고 내어주기도 합니다.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자리 때문에, 그 의자 때문에 개인의 생이 일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를 보아왔습니다. 조선왕조 때 4대의 왕에 걸쳐 33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한명회가 폐비윤씨 사건에 연루되어 사후에 부관참시를 당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기댈 곳이 있어야 꽃이 피어나고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주어야 풍성한 과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허리가 아프면 세상이 모두 의자로 보이는 것처럼 세상에 어느 하나 의자 아닌 것이 없습니다. 힘들고 거친 세상을 사노라면 의자를 빼앗기는 경우도 있지요. 설령, 의자를 빼앗긴다 하더라도 새로운 의자가 네발로 다가와 당신에게 몸을 내어줄 것입니다. 상처받고 지칠 때는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누군가의 의자에 기대어 치유의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축축하고 어두웠던 시간이 양지바른 의자에 앉아 새 에너지를 얻을 것입니다. 세상이 분명 살만한 가치가 있는 이유는 든든한 의자를 놓아주는 누군가의 따뜻한 품이 있기 때문이지요.

- 글. 시인 이병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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