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소리가 울린다. 먼데서 온 손님처럼 반갑게. 나는 지금 시골의 간이역 플랫폼에 서 있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기차는 그 커다란 몸체를 이끌고 쇳소리를 내며 내 앞에 살며시 멈춰 선다. 타고 내리는 사람은 서너 명 남짓. 하루 세 번 오는 기차는 그렇게 몇 사람을 싣고 다시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기차를 탔다. 엊그제 집을 떠나면서 마음이 그렇게 홀가분할 수 없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돌아가는 일상은 내 몸에 자물쇠를 채워놓기 일쑤였다. 그런 나날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었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야 한다는 게 너무 싫어 작정하고 집을 나섰던 것이다. 기차 여행은 나를 살맛나게 해주었다. 아, 나는 그 동안 우물 안에서 하늘만 보고 살아왔구나.
뽀얀 연기를 내뿜으며 달려오는 증기기관차는 간이역에 사람들을 풀어놓고 급할 게 없다는 듯 서서히 움직인다. 기차표를 넣고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 뒤로 낡은 간이역이 가만히 누워 있다. 다시 정적이 안개처럼 흐른다. 뭐든지 ‘빨리빨리’를 외치는 보통 사람들에게 간이역은 잠시 쉬었다 가라고 일러준다. 그 소리 없는 가르침, 느림이 주는 미학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먼 데서 온 손님처럼 기적소리 아련히 들리는 간이역 플랫폼에 우두커니 서 보라. 인생이란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대답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삶의 본질에 더 가까이 가려는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복잡다단한 인생행로에서 어찌 어찌하다 여기까지 흘러왔구나.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먹구름은 어디론가 흘러가고, 들꽃들은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자연에서 나온 나란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삶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시골 간이역에서 인생살이를 배운다. 겸손과 낮춤의 자세를 배운다.

- 글. 김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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