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지나간 여름날 오후. 가뭇하게 펼쳐진 초록 들판 위로 오색 무지개가 걸쳐 있었다. 아,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오고 뒤이어 떠오르는 희미한 기억 한 자락. 어린 시절의 여름살이에서 무지개는 우리들의 벗이었다. 한바탕 소나기가 퍼붓고 나면 곧잘 무지개가 섰다. 처음 무지개를 본 순간, 그 황홀하고도 뭉클한 기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쌍무지개 떴다!”무지개를 본 누군가가 이렇게 외치면 마을 안 아이들은 그 곳으로 모여들게 마련이었다. 무지개는 바로 마을 앞 개천과 야산 중턱에 신비롭게 걸려 있었다. 오색으로 아름다운 그 무지개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았다.
해마다 여름이면 그 오색찬란한 무지개가 그려진다. 올 여름 나는 그 무지개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드넓게 펼쳐진 들판이며 야산이 훤히 내다보인다. 그 들판의 한가운데에 꽃무리처럼 나타난 쌍무지개! 이게 얼마 만인가. 도무지 나타날 것 같지 않던 무지개였기에 내가 받은 느낌은 강렬했다. 아무튼 그 무지개로 하여 나는 잠깐이나마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의 여름, 무지개는 흔히 볼 수 있는 자연 현상 중의 하나였다.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무지개는 쉽사리 우리 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슨 이유일까? 여러 견해가 많지만 전문가들은 주된 원인으로 대기오염을 든다. 여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비가 온 뒤 밝은 햇살이 퍼지는 곳에, 드물기는 하지만, 무지개가 찬란한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에 걸린 활과 같다고 하여 천궁(天弓)이라고도 했던 무지개는 아름다운 색깔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무지개 밑으로 지나가면 남자가 여자로, 여자가 남자로 변한다는 유럽의 전설이라든지 하늘의 신(神)이 더 이상 홍수로 생명체를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표시로 인간에게 무지개를 보여준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또한 중국 사람들은 무지개가 연못의 물을 빨아올려서 생기는 것으로 생각했다. ‘서쪽에 무지개가 서면 강가에 소를 매지 말라’는 우리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선조들은 무지개를 가뭄이 아닌 홍수의 조짐으로 보았다. 근래 들어 무지개를 좀처럼 볼 수 없는 것도 유례없는 긴 가뭄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늘의 선녀가 땅으로 내려와 맑은 샘물에 목욕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갈 때, 다리의 구실을 하여 주는 게 무지개라는 전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오색찬란한 그 무지개를 다시 보고 싶다. 여름의 끝자락, 무지개를 보내준 자연의 뜻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 김청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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