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유행한 포크의 재림, ‘세시봉 콘서트’부터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몰이에 성공한 영화 ‘건축학개론’까지 최근 복고열풍이 거세다. 공연과 영화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많은 상품들 역시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고, 또 공유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추억을 불러일으켜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풍 제품이 특히 많은 분야가 식품업계이다. 1974년 6월 출시돼 가공우유시장의 넘버 원으로 꼽히는 ‘바나나맛 우유’는 소비자의 어릴 적 경험을 그대로 보존해 장수하고 있는 대표 브랜드다. 바나나가 비싸고 귀하던 시절, 당시로서는 이색적인 바나나 과즙 음료로 시장의 폭발적 반응을 얻었고 특히 독특한 항아리 모양 디자인은 가장 한국적 디자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잡고 마시기 불편하다’, ‘이동 및 진열 시 공간을 많이 차지해 유통비용이 높아진다’ 등 반대의견에 부딪쳐 몇 번이나 개조될 위기를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무사히 넘기고 용기 디자인을 고수한 덕분에 ‘바나나맛 우유’에 대한 소비자의 오랜 추억 또한 정성스럽게 보존될 수 있었다. ‘바나나맛 우유’는 하루 평균 판매량이 80만개에 달하는 인기상품으로 제조사가 판매하는 단일상품 중 가장 많은 매출(2010년 1300억원)을 올리고 있다.
식품 외에도 추억에 젖는 반가움과 친숙함을 겨냥해 성공한 제품은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된다. 2011년 3월 첫 모델이 출시된 후지필름의 ‘X시리즈’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익숙함’을 불러일으키는 데 집중해 디자인됐다. 세련미 대신 옛날 카메라 같은 직관적 디자인에 초점을 맞추었고, 조리개와 셔터스피드, 노출 보정 등을 모두 다이얼로 조작하도록 해 사용법을 모르는 어린이조차 처음 보자마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아날로그의 매력에 공감하는 소비자 덕분에 일반 디지털카메라의 세배를 호가하는 15만 엔이란 가격에도 불구하고 대히트 중이다. 눈여겨 봐야할 것은, 디자인은 익숙하되, 투입된 기술은 최첨단이란 사실이다. DSLR에 버금가는 기능을 훨씬 작은 몸체와 렌즈로 가능하게 하는 최첨단 미러리스기술은 물론이고, 피사체 포착 능력 또한 매우 뛰어나 수많은 매니아를 형성하고 있다.
복고열풍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분야가 바로 패션이다. 수영복의 경우 최근 몇 년 간 과감한 비키니가 지속 유행하면서 과다 노출로 민망해하고 고민했던 소비자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아하고 겸손한 복고풍 아름다움’이 올 여름 대유행 코드가 될 것이라는 2012년 6월 월스트리트저널의 예견대로 원피스형의 최신 디자인이 대거 등장해 눈길을 끈다. 지나치게 작은 크기로 디자인돼 과다노출을 조장하는 기존 비키니에 싫증을 느낀 소비자에게는 60~70년대식 원피스수영복 열풍이 매우 반가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복고풍 수영복 역시 디자인은 이전 유행했던 스타일이지만, 소재의 탄력성 및 스타일 보존력 등 기술적 측면은 완벽한 ‘신제품’의 면모를 겸비하고 있다.
마케팅전문가들은 경기침체가 장기화될수록, 경기가 좋았던 과거에 대한 향수가 더욱 커진다고 분석한다. 자극적인 맛이나 디자인이 쏟아져 나올수록 예전의 소박한 맛과 디자인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경제가 저성장기에 접어들수록 우리 상품 속에서 그동안 숨겨지고 잊혀졌던 친숙함의 요소를 재발견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민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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