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마사지 업소 금분의 사장 린동(양가휘)은 젊은 여성들에게 돈을 건네며 육욕을 해소한다. 부인 왕메이(금연령)는 남편의 바람을 모르지 않지만, 자식을 낳지 못했기에 돈 쓰는 것으로 마음을 달랜다. 금분의 최고 마사지 걸 핑궈(판빙빙)는 아끼던 후배 샤오메이가 손님의 손길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자, 홧김에 술을 마시고 쓰러진다. 핑궈의 흐트러진 모습을 본 린동이 겁탈을 하고, 그 장면을 유리창 닦이인 핑궈의 남편 안쿤(동대위)이 목격한다.
안쿤은 린동을 협박하다 못해 왕메이를 찾아가고, 왕메이는 린동이 체면 때문에라도 돈을 줄 리 없다며 자신의 몸을 갖는 것으로 복수하라고 한다. 왕메이와 정기적으로 만나던 안쿤은 핑궈의 임신을 계기로 다시 린동을 찾는다. 자식이 없는 게 한이었던 린동은 자신의 자식이라면 받아들이겠다며 12만 위안을 건네는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세상 모든 문제가 그러하듯, 우리가 듣는 현대 중국에 관한 뉴스들 또한 코끼리 만지기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한편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지점은 그리 멀지도 틀리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공산주의 국가 체제를 유지한 채 무서운 속도로 자본주의로 달려드는 거대한 땅덩어리와 엄청난 인구를 생각해보면, 변화와 가치관의 혼돈이 충분히 짐작되기 때문이다. 세계 지도에서 보면 눈에 띌까 말까한 반도에서 다시 반 토막 난 나라에 살면서도 압축 성장의 어지럼증을 느끼는데, 중국인, 특히 대도시에 사는 중국인이 느끼는 그것은 구토나 착란 수준이 아닐까 싶다.
바로 이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하여 담담하게 묘사한 수작이 <로스트 인 베이징>이다. 권태기의 중년 부부도, 아직은 사랑이 전부라고 믿을법한 신혼부부도 돈 앞에서는 생명을 거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설마 인간이 그렇게까지 타락하랴.” 싶다가도 “개연성이 없지는 않네.”라며 고개가 끄덕여지는 영화. 돈다발을 앞에 두고 거래를 한 네 사람은 그래도 인간적이다. 행동 후에나마 생각이라는 걸 했기 때문이다. 돈의 유혹 앞에서는 고민이나 후회를 하지 않는, 그래서 법으로 고발하여 감옥에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부패 관리들의 나라에 살다보니, <로스트 인 베이징>의 인민들이 인간적으로 보인다.
<로스트 인 베이징>은 감독의 성별을 모르고 보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여성 감독의 작품이라는 낙관이 내비친다. 성찰과 섬세함이 남다른, 그러면서도 그 묘사는 담담하다 못해 냉정한 수작을 만나게 되면, ‘여성 감독’이라는 수사는 더 이상 남성 감독에 대한 차별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ㅡ특유의 장점이 잘 발휘되었다는 칭찬의 뜻으로 ‘여성 감독’ 작품이라고 강조하고 싶어진다.
대부분의 장면을 좁은 실내에서, 클로즈업과 흔들리는 카메라 시선으로 인물을 따라가는, 일면 답답해 보이는 화면 구도지만, 인물의 감정을 가공하지 않고 담백하게, 그러면서도 여백을 많이 남기는 리위 감독의 연출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 옥선희 영화칼럼니스트 eastok7.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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