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막을 보면 고향이 생각난다. 굳이 멀리 가지 않더라도 우리 사는 주위에서 원두막을 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그 목가적인 풍경과 만날 수 있다. 찌는 듯한 여름날, 원두막에 앉아 수박이라도 한입 깨물어 먹으면 그 시원하고 달디 단 맛에 끈적한 더위가 저만큼 달아나곤 한다.
원두막 하면 으레 떠오르는 것이 수박 서리, 참외 서리에 대한 추억이다.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이라면 이런 추억 하나쯤 갖고 있을 것이다.
드넓게 펼쳐진 수박밭 가장자리에 무슨 쉼터나 정자처럼 우뚝 서 있던 원두막.
원두막은 수박밭을 감시하는 본래의 기능과 함께 마을 사람들의 쉼터 구실을 하기도 한다. 여름날 마을 어른들이 모여 얘기꽃을 피우며 더위를 쫓는 데가 바로 이곳이다. 땡볕이 기승을 부리는 오후 서너 시쯤, 원두막에 모인 사람들은 장기를 두거나 세상사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낸다. 원두막과 함께 그려지는 이런 풍경들은 고단한 삶에 한 가닥 위안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원두막을 볼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져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내 나이 불혹을 넘어서고 말았다. 그 때 그 수박밭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잡초만 무성하다. 원두막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여름 과일은 많이 쏟아져 나오지만 원두막을 지어놓고 감시하는 일은 드물다. 요즘 나오는 과일들은 제철이 따로 없을 만큼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대량으로 출하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두막을 보기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원두막에는 돗자리와 얇은 이불, 라디오, 전등이 놓여 있었는데, 원두막의 기능을 말해주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원두막은 작은 생활공간이었던 셈이다. 집안사람들은 교대로 나와 수박밭을 지켜야 했다. 한낮에는 감히 서리를 시도하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밤이 문제였다. 전등은 이때 필요한 것이다. 캄캄한 수박밭을 수시로 전등을 비추고 다니지만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다음 날 아침, 수박밭에 가보면 밤새 서리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그 시절 마을마다 수박을 재배해서 시장에 내다팔곤 했는데, 농가의 수입원으로 큰 몫을 차지하였다. 수박을 비롯해서 참외, 토마토 등을 리어카에 가득 싣고 십리나 되는 먼 길을 끌고 다녀야 했던 기억이 어제인 듯 생생하다. 과일을 다 팔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언제나 해가 설핏 기울어 있거나 깜깜한 밤이었다. 헐값에라도 다 처분하고 나면 온종일 고생한 보람이 있었지만 어떤 날은 워낙 시세가 없어 남겨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 해 여름, 해마다 여름 과일을 재배해 큰 재미를 못 본 아버지는 집 앞 텃밭에 수박, 참외, 토마토 대신 옥수수를 심었다. 옥수수는 다른 과일과는 달리 값이 일정한 편이었다. 푹 삶아서 사람들이 많이 꾀는 해수욕장이나 유원지에 갖고 가면 금방 동나버리곤 하였다.
그러다 보니 그 해는 여름 과일을 사 먹거나 이웃집에 가서 얻어먹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매번 그럴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수박을 먹고 싶다고 하면 아버지는 이웃집에 가서 팔다 남은 수박이나 벌레가 먹어 한 쪽이 뭉그러진 참외며 토마토를 얻어 오셨다.
요즘 아파트 단지나 공원에 가보면 사람들이 쉴 수 있게 정자를 지어놓은 걸 흔히 보게 된다. 개량식 원두막이라고나 할까. 사람들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왠지 허전해 뵌다.
원두막과 수박 서리에 얽힌 재미난 얘기를 그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늦여름날이다.

- 김청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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