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호텔에서 지구를 보면
우편엽서 한 장 같다
나뭇잎 한 장 같다
훅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저 별이
아직은 은하계의 오아시스인 모양이다
우주의 샘물인 모양이다
지구 여관에 깃들어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만원이다
방이 없어 떠나는 새, 나무, 파도, 두꺼비, 호랑이, 표범,
돌고래, 청개구리, 콩새, 사탕단풍나무,
바람꽃, 무지개, 우렁이, 가재, 반딧불이...많기도 하다
달 호텔 테라스에서 턱을 괴고 쳐다본 지구는
쓸 수 있는 말만 적을 수 있는 엽서 한 잎 같다

- 박용하 시, 「지구」 전문 -

시를 쓴다고 밥이 나오나 집이 생기나? 한창 잘나간다는 친구가 술자리에서 한말입니다. 안타깝지만 동의합니다. 하지만 달에 있는 호텔 테라스에서 턱을 괴고 지구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시인뿐입니다.
달은 인류가 유일하게 직접 탐험한 천체이지만 지구의 자전속도와 달의 자전속도가 같아서 지구에서는 항상 달의 한쪽면만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달 호텔에서 지구 여관을 보면 ‘훅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나뭇잎 같고 우편엽서처럼 작은데 지구가 은하계의 오아시스라도 되는지 인간이 머무르는 방은 늘어가고 다른 생물들은 방이 없어 지구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 요양원에서 만난 할머니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열아홉 나이에 배우셨다는 ‘찔레꽃’ 노래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하며 그 노래만 부르고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지구에서 형성된 기억의 입자들을 모두 날려 보내고 찔레꽃 아름다운 기억만을 가슴에 안고 우주를 항해하듯 편안하고 고요한 얼굴이셨습니다. 달에서 바라보는 지구가 얼마나 연약하고 작겠습니까? 손바닥보다 작은 나뭇잎 지구에서 아옹다옹 타툴 일이 무엇이며 우편엽서 지구에 쓸 수 있는 글은 무엇이겠습니까?
1997년 채택되어 2005년 발효된 지구온난화의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국제기후변화협약인 쿄토의정서(Kyoto Protocol)의 대의는 사라지고 각 나라가 자국의 이익에만 급급한 갈등으로 무방비하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와 온실가스가 우편엽서 지구의 나뭇잎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지구가 진정 은하계의 오아시스이며 우주의 샘물일 때, 인간들끼리만 떠들썩하게 춤추며 사는 나뭇잎 여관방에 반딧불이, 우렁이, 청개구리, 무지개 그리고 호랑이 표범까지 모두 한방에서 뒹굴 수 있으며 몽당연필에 침 흠뻑 묻혀 찔레꽃 아름다운 추억 몇 마디 쯤 우편엽서에 쓸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병룡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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