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여름이 물러나고 가을이 오고 있다. 그 많던 여름 꽃들도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지난 여름 내 마음을 한없이 설레게 했던 연꽃도 오늘 아침에 보니 꽃망울이 시들고 있었다. 그 맑고 청초하던 자태는 어디 가고 시간의 힘 앞에 어쩔 수 없이 시들고 마는 자연의 생존법칙이라니. 내년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홀연히 나타날지.
지역 차이는 있겠지만 연꽃은 9월에도 볼 수 있다. 가는 여름이 아쉬워 가을에도 생명줄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고운 자태를 즐기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고마운 꽃이 아닐 수 없다. 한꺼번에 피지 않고 석 달 동안 계속해서 피고 지니 참으로 오묘한 꽃이다. 긴 타원형에 암술과 수술, 꽃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꽃말이 재밌다.
‘당신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연꽃을 보면 절로 마음이 순결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것일까?
눈이 아니라 가슴으로 보는 꽃이라던가. 일찍이 중국 북송 시대의 학자 주무숙은 ‘애련설(愛蓮設)’에서 연꽃을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오직 연꽃을 사랑함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거기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기 때문이다. 속이 비어 사심이 없고, 가지가 뻗지 않아 흔들림이 없다. 그 그윽한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그의 높은 품격은 누구도 업신여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연은 꽃 가운데 군자라 한다.

연꽃은 이런 꽃이다. 온갖 갈등과 모순과 부조리로 엮어진 인간세상을 돌아볼 때 연꽃이 보여주는 정결하고 높은 가르침은 참으로 웅숭깊다. 흙탕물 속에서 함초롬히 피어나 더욱 고결해 뵈며 하늘을 향해 부챗살 같은 잎사귀를 내밀고 있는 모습도 보기 좋다.
연꽃의 종류는 다양하나 홍련이 대부분이며 백련은 꽃이 연잎 사이에 수줍은 듯 피어나기 때문에 더욱 사랑받는다. 인도와 이집트가 원산지인 백련(白蓮)은 6월과 9월 사이에 하얀 꽃을 피우는데 매우 귀한 꽃이라 그런지 가만히 바라보는 것조차 아까울 정도다.

일상에 쫓겨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현대인들에게 연꽃 한 송이가 주는 의미는 크나크다. 혹자는 연꽃에서 군자의 모습을 봤다고 했다. 다분히 철학적인 의미가 섞인 말이지만, 한 송이 연꽃을 피우기 위해 더러운 진흙 속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세상에 내놓고 그윽한 향기까지 내뿜으니 얼마나 대견스러운가.

4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회산 저수지는 암울했던 일제시대에 조상들의 피와 땀으로 축조되었다. 영산강 하구둑이 건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저수지는 인근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젖줄 역할을 하였으나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연꽃밭으로 변했다. 당시 저수지 옆 덕애 부락에는 6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이 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우물 옆 저수지 가장자리에 백련 12그루를 구해다가 심은 후 해마다 번식을 거듭해 지금처럼 규모가 커졌다.
연꽃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매혹의 꽃이다. 여름과 가을 사이의 이 좋은 절기에 연꽃을 찾아 나서 봄은 어떨까 싶다. 삶이 고통스러울 때 연꽃은 희망과 용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연꽃 한 송이가 던져주는 메시지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때이다.

- 김청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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