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나는 며칠 간 주어진 휴가를 고향에서 보냈다. 다들 계곡이다 강이다 바다다 해서 호들갑을 떨었지만 나는 작정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에서 보낸 삼박 사일의 휴가는 정말이지 꿈같은 시간이었다.
첫날, 점심나절. 고향에 남아 있는 몇몇 소꿉동무들과 시냇물에 뛰어들어 멱을 감았다. 어느덧 사십대 중반에 접어든 우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동심으로 돌아가 있었다. 물장구 치고, 모래밭에 드러눕고, 은어떼, 송사리떼를 쫓는 모습은 영락없이 어린 아이였다.
여울을 가로지르며 쏜살같이 달아나는 은어떼는 도무지 우리들의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큼 날렵하고 재빨랐던 것이다. 괄괄 흘러내리는 물살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았고, 조각구름 몇 점 떠다니는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랬으며, 나무숲에서 우짖는 매미 소리는 내내 우리들의 귀를 간질였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연 속에 파묻혀 있자니 문득 답답한 도시 생활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아, 도시와 시골의 극명한 대비! 그날은 해가 설핏 기울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우리들의 놀이는 마냥 재미있었다. 감자 캐기, 옥수수 삶아 먹기, 고구마 캐기, 매미 잡기, 보리 베기….


그 중에서 은어잡기는 제일 신나는 놀이였다. 수초 우거진 시냇물에 반두를 걸쳐놓고 두 발로 고기를 모는 일은 정말이지 체험해보지 않고는 그 재미를 모른다. 우리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물을 흠뻑 뒤집어썼다. 동작이 날쌘 은어는 그물 안으로 들어왔다가도 잽싸게 빠져나가고는 해서 우리들의 마음을 허탈하게 했다.

이렇게 잡은 은어를 즉석에서 먹는 맛은 별미 중의 별미였다. 은어의 비늘과 내장을 훑어내고 초고추장에 찍어 뼈째 씹어 먹으면 수박향이 진하게 우러나는데, 은어의 다른 이름 ‘향어’는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은어는 그렇게 우리들의 식욕을 채워주었다.
시골에서 자란 이들에게 은어는 낯설지 않은 민물고기이다. ‘청어목 은어과’에 드는 이 물고기는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가 볼만하다. 등 쪽은 올리브색, 배 쪽은 흰색이며 아가미 뚜껑 뒤쪽에는 황색의 선명한 얼룩무늬가 있다. 가슴지느러미 안쪽에 노랑무늬가 보이고, 열목어 송어 연어처럼 꼬리지느러미와 등지느러미 사이에 기름지느러미가 있다. 입턱이 발달해 하천 바닥의 돌이나 자갈에 붙어 있는 이끼를 갉아먹고 산다.
산란기가 되면 수컷은 몸 색깔이 검게 변하고 몸 옆면 아랫부분과 머리 아랫부분에 붉은색의 띠가 나타나며 지느러미는 황색을 띠게 되어 암컷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산란기는 가을-초겨울로 바다와 접한 하구에 산란장을 만든다. 먼저 암컷이 지느러미로 모래바닥을 파기 시작하면 여러 마리의 수컷들이 합세해서 동그란 산란장을 만드는데, 이때 암컷은 보통 1만~2만개의 알을 낳는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바로 사정하여 수정을 시키고 모래로 산란장을 덮어버린다. 부화한 새끼 고기는 곧바로 바다로 내려가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 산란을 위해 하천으로 다시 올라온다.


은어는 물이 맑고 자갈이 깔린 강이나 하천에서 주로 서식하는데 최근 들어서는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개발 위주의 국가 정책으로 인해 이 땅에서 물고기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함부로 흘려보내는 생활하수와 곳곳에 설치된 인공댐, 수중보는 은어가 하천 상류로 올라오는 걸 막고 있다. 길이 막혀버린 은어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안타깝기만 하다.

어린 시절, 은어는 흔하디흔한 물고기였다. 학교가 파하고 또래 친구들과 시냇가로 나가면 여울을 거슬러 오르는 은어떼를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천은 은어 낚시꾼들로 늘 북적거렸는데, 한 친구는 입질이 잦은 저녁나절 동안 수백 마리를 낚기도 했다.
몇 년 전 한강 어귀에 은어가 돌아왔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물이 맑아졌다는 증거이겠으나 은어 회귀가 한강의 수질을 영원히 담보하지는 못할 것이다. 한강을 되살릴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언제 또 모습을 감출지 모를 일이다.
은어를 보면 고향이 생각나고 어린 시절이 갈마든다. 거울처럼 맑은 개울물에 뛰어들어 은어떼를 쫓던 지난여름이 마냥 그립다.

- 김청하 수필가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