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행사 많은 가을, 영화계도 빠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10월4~13일)가 17회를 맞이하고, 4회째인 DMZ국제다큐멘타리영화제(21일~27일)는 파주 출판 도시로의 접근 불편을 완화하기위해 KTX 할인 행사, 셔틀 버스 운영 등으로 전국 관객을 부르고 있다. 여성인권영화제 등, 작은 규모의 내실 있는 영화제들도 문화 행사 홍수 속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개봉 영화중엔 다큐멘터리(이하 다큐)가 많이 선보인다. DMZ국제다큐멘타리영화제와 EBS국제다큐영화제 등, 다큐만을 특화한 영화제가 생긴 데다, 독립영화계의 노력이 더해진 성과라 하겠다. 최근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둔 다큐만 봐도 음악, 춤, 요리, 종교 등 소재가 다양하고 독일 감독 작품이 특히 많다.
부퍼탈 무용단을 이끌었던 피나 바우쉬의 무용 세계가 <피나>를 통해 조명된다. 빔 벤더스 감독은 바우쉬가 암 진단 5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그녀의 제자들과 함께 바우쉬가 안무한 작품 4편을 필름에 담았다. 3D 영상 덕분에 무용수의 미세한 근육 떨림과 땀방울까지, 무대 앞자리에서 지켜보는 감동을 맛볼 수 있다. 베스 카그맨의 <퍼스트 포지션>은 청소년만 참가할 수 있는 세계적 발레 콩쿠르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우승을 꿈꾸는 댄서 6명의 노력을 그린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팔레스타인 출신 석학이자 친구인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이스라엘과 중동 출신 젊은이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괴테의 작품에서 이름을 딴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마침내 2005년, 팔레스타인의 수도 라말라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하게 된다. 이 길고 험난한 여정을 따라간 이는 폴 슈마츠니고, 영화 제목은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다.
최근 가톨릭 관련 다큐와 영화가 국내에서 잔잔한 물결을 일으킨 것은 종교 차원보다 구도자의 삶 동경, 평정심을 찾고자하는 현대인의 갈구 때문일 것이다. 런던의 노팅힐 중심가에 위치한 가르멜 봉쇄 수도원의 수녀들 일상을 담은 마이클 와이트의 <사랑의 침묵>은 은근한 열기를 이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의 독립 다큐도 4편이나 된다. <나 나 나 : 여배우 민낯 프로젝트>는 독립영화계를 대표하는 세 명의 여배우에게 카메라를 쥐어주고 자유롭게 자신과 주변을 찍게 했다. 27살, 29살, 40살 미혼모 세 명의 일상을 담은 백연아의 <미쓰 마마>는 미혼모를 손가락질 하지도 동정하지도 않는다. 김경만 감독의 <미국의 바람과 불>은 미국을 우방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미국의 실상을 알려주고자 한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과 그녀를 지지하여 희망버스에 탄 탑승객의 연대를 기록한 이수정 감독의 <깔깔깔 희망버스>는 의외로 무겁지 않게, 한국 노동운동사의 한 면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영화 팬에게 강추 하고 싶은 다큐는 로버트 B. 웨이드의 <우디 앨런 :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다. 우디 알렌 팬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나 개그 작가, 스탠딩 코미디언, 배우, 감독, 클라리넷 연주자, 스캔들 메이커로 끊임없이 자신을 과시해온 엉뚱한 수재의 삶을 정리해본다는 차원에서 감상하면 좋겠다. 우디 알렌 자신의 시니컬한 자기 평가에서부터 그의 뮤즈이자 연인, 동료였던 다이앤 키튼의 인터뷰, 그의 영화에 출연했던 세계적인 스타들의 칭찬까지, 영화 팬을 만족시킬 이야기로 넘친다.

- 옥선희 영화칼럼니스트 eastok7.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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