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볶음, 계란말이, 콩조림, 멸치볶음, 어묵무침…. 학창시절 어머니께서 싸주시던 도시락 반찬들이다. 등굣길 덜컹거리던 버스 안에서 반찬 국물이 흘러 당황했던 적도 있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은 너무도 아름다운 추억이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도시락 속 메뉴가 늘 궁금했다. 그래서일까.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앉아 도시락을 열 때의 그 설렘은 지금껏 특별한 빛깔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살기가 팍팍했던 시절, 도시락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4050세대에게 있어 도시락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요, 친구들과의 생생한 추억이다. 그땐 왜 그리 배가 고팠을까. 겨울철, 교실 토밥 난로 위 층층이 쌓인 도시락에서 피어오르던 누릉지 내음이 몹시도 그리운 가을이다.
요즘 도시락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바쁜 일정 등 이유야 어찌됐던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이런 움직임에 발맞춰 도시락 전문업체들은 각사의 노하우를 내세워 다양한 종류의 도시락을 출시하고 있다. 맛, 영양, 가격 삼박자를 갖춘 신생 전문 도시락업체들도 속속 등장했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한식, 일식, 중식은 물론 다이어트 도시락 등 자신의 기호와 성향에 따른 맞춤형 도시락도 선택 가능해졌다.
특히 최근엔 다양한 메뉴와 고급스러운 맛을 느낄 수 있는 특선, 명품 도시락 등 프리미엄 제품이 큰 인기다. 웰빙에 이어 힐링(Healing)이 사회 전반에 급격히 확산되면서 맛과 영양이 한층 강화된 제품의 수요가 증가하고, 소비 트렌드 및 식생활 변화 등으로 프리미엄 먹을거리의 영역이 점차 확대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본도시락은 직장인을 핵심 타깃층으로 프리미엄 한식 도시락을 전면에 내세우며 튀김 일색의 저가 도시락과의 차별화 전략을 세웠다. 전 메뉴를 흑미밥으로 구성하고, 1만원대 명품도시락은 명란젓, 매실장아찌, 황태채무침 등 건강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반찬으로 채웠다. 특히 명품, 특선, 실속 등 세 가지로 나눠 3000~1만5000원대의 다양한 가격대로 선택의 폭을 넓혔다. 테이크아웃 중심이던 기존 도시락 전문점과 달리 홈 배달 서비스 시스템을 도입한 점도 눈에 띈다.
회전초밥 레스토랑 스시로한국은 실속파 직장인을 위한 스시 도시락 4종을 내놨다. 인기 메뉴로 엄선된 스시로 도시락 A(8800원)는 참치 아카미, 아보카도 새우, 장어, 갑오징어, 광어, 연어, 날치알 등 총 7피스로 구성됐다. 10피스가 든 도시락 B(1만2500원)는 A 메뉴에 계란말이와 연어알, 연어 1피스가 추가됐다. 도시락 C(1만5500원)는 참치 아카미 2피스에 게살, 단 새우가 추가돼 총 13피스로 구성됐다. ‘내 맘대로 도시락(주문량에 따라 가격 책정)’은 고객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직접 선택해 원하는 만큼 담을 수 있어 인기다.
CJ푸드빌의 차이니즈 레스토랑 차이나팩토리도 인기 메뉴들로 구성한 도시락 ‘딜라이트 박스’를 출시했다. 새롭게 출시된 메뉴는 유린기, 깐풍기, 꿍빠오, 안심찹 도시락 등 총 4종으로 가격은 9900원부터 1만1900원선이다.
호텔도 프리미엄 도시락 열풍에 가세했다. 명동 롯데호텔은 외국인 비즈니스맨과 도심 주변 직장인을 위해 ‘아침 투고박스’를 출시했다. 크루아상 2개와 오렌지, 커피, 보타니 주스, 에비앙 워터로 구성된 투고박스의 가격은 3만원대. 도시락치고는 비싼 가격이지만 직장인 사이에 반응이 좋은 편이다.
신라호텔 일식당 아리아께에서 판매하는 테이크아웃 사시미 도시락은 8만원에 세금과 봉사료가 별도다. 적잖은 가격이지만 스시, 조림, 튀김, 샐러드 등 다양한 요리를 한 번에 맛볼 수 있어 비즈니스맨을 중심으로 찾는 이가 많다.
업계 관계자는 “도시락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뀜에 따라 맛은 물론 영양, 가격대를 고려해 다양한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며 “도시락을 즐기는 모습과 방식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했지만 먹거리에 대한 신뢰와 영양가 높은 웰빙 식단의 가치는 더욱 강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혹자는 도시락은 둘이서 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싸준 사람과 먹는 사람 둘이서 말이다. 서로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번 주말 아내와 아이들을 위한 사랑의 도시락을 직접 싸서 인근 공원으로 단풍나들이를 가면 어떨까. 맛난 도시락 내음이 어디선가 풍겨오는 듯하다.

- 노경아 jsjy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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