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시내를 걷던 한 남자가 ‘저는 앞을 보지 못합니다’라는 팻말을 두고 구걸을 하던 한 맹인을 발견하게 된다. 벌이가 시원치 않던 그 걸인을 보더니 이 남자는 그 팻말에 한 줄의 문장을 덧붙인다. “봄이 왔습니다.” 아름다운 봄날을 보지 못하는 맹인의 안타까움이 행인들의 시선을 붙잡자, 앞에 놓인 깡통에는 돈이 수북히 쌓이게 된다. 이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은 현대 광고의 아버지이자 전설인 데이비드 오길비이다.
1911년 영국에서 출생한 오길비는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했지만, 2년 만에 학업을 중단한다. 그 때부터 주방보조, 스토브 방문 판매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잠시 다니게 된 광고 회사에서 광고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1948년 37세의 나이에 단 두 명의 직원과 함께 광고회사를 시작한다. 이 회사는 불과 몇 년 만에 세계적인 광고 마케팅 기업인 '오길비 앤 매더'로 성장하여, 현재 125개국에 약 497개 지사를 가지고 있는 광고계의 공룡 기업이 됐다.
오길비는 스타 카피라이터였다. 무명기업에 가깝던 ‘헤더웨이 셔츠’가 그의 광고문구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롤스로이스, 쉘, 제너럴푸드 등 내노라 하는 많은 기업이 오길비의 손을 거쳐갔다. 당시 제작기준 조차 없던 광고계에서 오길비는 철저히 분석적인 광고를 시도했다.
오길비에게 있어 리더쉽의 롤모델은 젊은 시절에 주방보조로 일하면서 상사로 모셨던 수석 주방장 피타흐였다. 피타흐는 게으름과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주방의 모든 직원이 위생, 매너,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프로가 되기를 요구하는 엄한 리더였다. 그러나 그의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모두가 그를 존경했다고 한다. 오길비는 여기서 누구보다 실력 있고, 부지런하고, 철저한 리더는 사람들을 일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길비는 더 많은, 더 훌륭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항상 열정을 쏟았다고 한다.
평소 “반드시 당신들보다 더 나은 사람을 고용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조직은 난쟁이들의 회사가 될 것이오. 필요하면 당신들보다 더 많은 돈을 주어서라도 큰 인물이 될 사람을 데려오시오” 라며 직원들을 독촉했다고 한다. 그는 인재를 판단할 때 화려한 개인기보다 기본기를 중요하게 여겼다. 광고가로서의 능력 뿐 아니라 즐겁게 일하는가, 자신감이 있는 전문가인가, 정직하고 다른 사람을 인간적으로 대하는 신사인가 등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이렇게 뽑은 최고의 인재들에게 최고의 대우와, 교육 지원, 탈권위주의적인 조직 문화 등을 제공하면서, 그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최고를 향한 오길비의 집념은 클라이언트를 선택할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광고주를 잡기 위한 전쟁터 같은 광고계에서 오길비는 매해 평균 59% 정도의 고객을 거절했다. 오길비의 고객이 되려면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했는데, 대신 이런 과정을 거쳐 선택된 광고주와 제품에 대한 그의 애정과 자부심은 각별했다. 굳이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오길비는 “내가 광고하는 제품은 세계 최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광고한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스스로도 최고였지만, 최고의 인재를 길러내고 자신의 고객을 최고로 만들 줄 알았던 오길비. 그의 이름은 광고 산업의 한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자 위대한 기업가의 대명사로 남았다.

하주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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