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손수레

“아버지,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잘하고 올게요!”
아빠가 운영하던 사업이 실패하고 우리 가족은 48평 아파트에서 반지하방 원룸으로 내려앉았다. 그 때 오빠는 고3, 대학원서 접수를 며칠 남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빠는 “괜찮아, 아빠가 우리 아들 대학도 못 보내줄 것 같아? 걱정마. 넌 열심히만 하면 돼”하고 오빠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결국, 원서 접수 당일 오빠는 원서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 앞에 앉아 조용히 출사표를 던졌다.
“저 대학 안갈 거예요. 취직할거예요 취직. 왜, 요즘 실업계 학생인데도 중소기업 들어가서 돈 많이 벌잖아요! 대학은 나중에. 우리 형편 나아지면 그 때! 그 때 갈게요. 열심히 해서 내가 원하는 회사 취직할거니까 걱정마세요!”
아빠는 그런 오빠를 탐탁해하지 않았다. 그건 다 허황된 꿈일 뿐이라고. TV에 나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 사람이 대학이라는 간판이 있어야 받아주지, 가방끈이 짧으면 어딜 가던 무시당한다며 시종일관 부정적인 답변뿐이었다. 그런 아빠의 못마땅함을 무시하고 오빠는 매일 밤을 샜다.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가 꿈이었던 오빠는 대학 진학을 포기한 대신, 남들보다 몇 배 더 땀 흘려서 벌어진 거리를 따라잡아야 한다고 했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끙끙거렸다.
컴퓨터와의 사투를 벌인 지 어느덧 3개월쯤 지났을 때일까. 집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 블로그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혹시 어른 계시나요?”
블로그? 우리 집에 블로그 하는 사람은 오빠뿐이라고 생각한 나는 아, 잠시만요, 라는 말을 남긴 채 오빠에게 전화를 넘겼다. 10분 넘게 전화기를 붙잡고 있던 오빠는 아, 감사합니다, 정말요? 등 연신 감탄사를 뱉었다. 무슨 일인지 점점 궁금해졌다. 전화를 끊고 오빠는 대뜸 소리를 질렀다. 자신이 취직이 됐다는 것이었다. 엄마와 아빠를 불러 자세한 얘기를 듣는데, 그 얘기는 실로 놀라웠다.
오빠는 그동안 자신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을 블로그에 계속 올렸다고 했다. 또한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생기는 오류나 시행착오, 보완해야할 점 등을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들과 공유하며 생각을 나눴고, 그렇게 해서 생긴 결과물을 사람들에게 무료로 배포하여 설문조사도 했다고 한다. 오빠가 만들던 프로그램은 웹 번역기였는데 그것이 꽤 유명해져서 한 중소기업 직원에게까지 알려졌고, 그 프로그램을 써본 직원이 오빠와 함께 일하고 싶다는 연락을 취해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오빠가 불과 20살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고, 나이를 듣자마자 정말 놀라운 재능이라며 칭찬했다고 한다. 오빠는 다음 날, 그 중소기업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집을 나서는 오빠의 발걸음이 어느 때 보다도 가벼웠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온 오빠는 다음 주부터 그 회사에 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아빠는 ‘네가 고졸인걸 알고도 취직시킨 것이냐?’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고 오빠는 그의 대답으로 우리에게 면접 내용을 말해주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정도의 프로그래밍 실력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네, 학력이 고졸이라고 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아. 요즘 사람들 좋은 대학 나오고 감당 안 되는 어마어마한 스펙을 가져야지만 대기업 입사해서 떵떵 거리고 산다고들 하는데, 그거 다 틀린 말이야. 난 자네의 조건을 보지 않아. 오직 자네의 능력만을 볼 뿐이야. 난 자네에게 믿음을 주는 대신 자네는 자네의 능력을 이곳에서 가감 없이 펼쳐주기만 하면 되네. 나와 함께 중소기업을 위한 희망 손수레가 되어보지 않겠는가?”

오빠의 말을 듣자마자 엄마는 눈물을 쏟았다. 나 또한 가슴 한켠이 먹먹해졌다. 아빠는 말없이 오빠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중소기업, 중소(中小)의 규모를 가진 기업을 뜻한다. 하지만 이번 일이 있은 후 우리 가족의 인식은 달라졌다. 물질적인 요소는 얼마든지 중소(中小)일 수 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작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간의 정은 그 어느 곳보다 끈끈하고 큰 곳이 중소기업이다. 우리에겐 더 이상 중소기업이 아닌 대대(大大)기업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능력은 다르다. 그러나 그 능력과 재능을 평생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그것을 기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오빠가 이 회사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오빠 또한 전자의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빠가 취직한 중소기업 에서는 아무런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오빠의 능력만을 보고 믿음을 주었다. 그러기에 나는 앞으로 오빠가 후자의 삶을 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빠의 첫 출근, 오빠는 새벽부터 일어나 생전 가지 않던 아침운동까지 갔다왔다. 아빠가 새로 사준 서류가방 안에 혹시나 무엇 하나 빠지지 않았을까 가방을 수없이 열고 닫았다. 오빠의 미래만큼이나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오빠는 집을 나섰다. 현관문 위에 매달린 작은 종이 기분 좋게 흔들렸다.
오빠는 우리 가족의 미래이다. 또한, 오빠는 오빠의 회사의 미래이다. 오빠의 회사는 중소기업의 미래이다. 중소기업은 우리나라의 미래이다. 우리나라를 짊어지고 달려가는 오빠를 늘 응원할 것이다. 오빠의 컴퓨터 책상 위, 바람을 맞으며 펄럭이는 신문지 위의 한 구절이 눈에 띄었다.
‘대한민국의 미래, 중소기업이 이끈다.’

김보경
고양예술고등학교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