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겨울이 시작되었다.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올 겨울 추위는 그 어느 해보다 더한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겨울 체감 온도는 소위 가진 자들보다 몇 배는 더 내려간다. 추위도 추위지만 경제가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까닭이다.
며칠 전 내가 사는 소도시의 어느 주택가를 지나가다 리어카에 연탄을 가득 싣고 숨을 몰아쉬며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는 아저씨를 만났다. 정말 오랜만에 대하는 모습이라 마음 한쪽에서 싸한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시대의 자화상이랄까. 힘겹게 가파른 골목길을 올라가는 그의 얼굴에 빗방울 같은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저 80년대, 아궁이에 연탄을 때던 시절이 떠오른다. 어렵게 살던 시절의 겨우살이에서 김장과 연탄은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하루 연탄 두 장이면 끼니를 해결하고 온가족이 정답게 모여앉아 따듯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늘 모자라던 우리집 살림살이에 연탄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연탄 파동이라도 일어나면 연탄은 더 귀한 존재가 됐다. 좀 잘 산다고 하는 집들은 한 번에 몇 백 장씩 갖다놓고 겨우내 썼지만 기껏해야 백장 이백 장이 전부인 우리집은 겨울이 끝나기 전에 동나 버렸다. 연탄을 주문하면 동네 입구나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까지만 갖다놓기 때문에 연탄 나르는 일은 큰 고역이었다.
연탄이 다 떨어지면 솔가지, 장작 따위의 땔감으로 겨울을 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도 만만치 않았다. 산에서 땔감을 구하기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산으로 땔감을 구하러 다녔는데 매번 힘들어 하셨다. 하루도 쉬지 않고 땔감을 져 나르던 아버지는 어느 날 몸져눕고 말았다. 땔감 구하기는 이제 내 일이 되었다. 나는 하루에 두 번, 지게를 지고 집 뒷산으로 올라가 마른 솔잎이며 잔 나뭇가지를 긁어모았다. 그 같은 일은 80년대가 저물고 90년대 초까지도 계속됐다. 이른 새벽 눈꺼풀을 비비며 일어나 연탄을 갈던 추억도 삼삼하게 떠오른다.
20여 년 전의 일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 연탄은 가난한 사람들의 상징이었다. 긴긴 겨울밤, 아랫목을 따뜻하게 데워주던 연탄 한 장. 문밖은 차갑게 얼어붙었지만 방안은 온기가 가득했다.
연탄의 열기를 계속 누리려면 제때 갈아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는데 그 일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연탄 갈기는 주로 어머니가 맡았다. 어머니는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제일 늦게 잠드셨고 제일 먼저 일어났다. 뜨끈뜨끈한 아랫목에서 곤히 자다 인기척에 부시시 일어나 쪽문으로 부엌을 내다보면 어머니가 연탄을 갈고 계셨다. 마치 자동시계처럼 연탄 가는 시간을 정확하게 꿰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 세 식구는 어머니의 그런 부지런함 덕분에 매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었다.
겨울을 따듯하게 해주었던 연탄은 한편으론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연탄가스 중독 사고는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신문 사회면에는 연탄가스 중독사고 소식이 단골기사로 올라오곤 했는데, 대부분 사망으로 이어져 큰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삶이 힘겹고 고달플 때 연탄은 그리움처럼 마음을 적신다.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연탄은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몸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추위가 더한 12월. 연탄과 군불로 난방을 했던 그 옛날이 삼삼히 그려진다.

- 김청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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