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철새가 돌아왔다. 저 먼 시베리아 대륙에서 훨훨 날아온 철새들을 보면서 문득 회귀(回歸) 본능을 생각한다. 사계절이 뚜렷하니 이렇게 잊고 지냈던 고귀한 생명들이 찾아오는구나! 봄이 오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가을이 오면 북녘 땅의 기러기가 찾아온다. 그리고 마침내 겨울이 오면 헤아릴 수조차 없는 각종 철새가 푸른 창공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사계절을 살아가는 텃새 또한 얼마나 많은가. 새벽부터 저녁까지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이고 기쁨이다. 참새, 까치, 제비, 할미새, 종다리, 까마귀, 직박구리, 딱새, 박새 따위의 새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 곁으로 찾아와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준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개체 수나 밀도가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어 이에 대한 보호 대책이 절실한 실정이다. 우리 주위에서 거의 매일 만나게 되는 참새와 까치마저도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또한 봄철 들판에 나가면 자주 만날 수 있었던 뜸부기며 논밭 근처에서 흔히 봐왔던 꿩도 언제부턴가 구경하기 쉽지 않다. 딱다구리류 중 몸집이 가장 큰 크낙새는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희귀종인데 안타깝게도 산림 훼손, 공해 시설의 범람 등으로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다.
텃새 못지않게 겨울철새의 개체수도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독수리(천연기념물 제243호), 큰고니, 두루미, 도요새, 검은머리물떼새, 큰기러기, 검은머리갈매기, 재갈매기, 쑥새, 쇠기러기, 흰뺨검둥오리, 황새 등 그들이 살아 갈만한 서식지는 몇 군데에 불과하다. 물질문명이 낳은 폐해치고는 너무 가혹하다.
강 하구와 들판이 어우러진 곳은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그야말로 철새들의 잔치 마당이 된다. 국경을 초월해서 날아온 갖가지 철새들은 이 지구라는 땅 덩어리를 하나로 묶는 구심체 역할을 한다. 갈라진 대륙과 대륙, 인종간의 지리한 싸움이 한낱 헛됨 것임을 몸짓으로 알려준다.
무릇 모든 생명들은 나름의 질서가 있기 마련이다. 인간 세상에 교통법규가 있듯이 새들 세계에서도 그들만의 말과 질서가 있다. 저 창공의 철새 무리를 보라. 수천, 수만 마리가 떼를 지어 이동하지 않는가. 선두에서 후미까지 한 마리도 이탈하지 않고 춤을 추듯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 경이로움을 넘어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 과학자들조차도 새들의 이런 현상에 대해 그 정확한 원리를 밝혀내지 못했다.
철새는 한 번 이동할 때마다 보통 3개월에 걸쳐 수 천, 수 만 ㎞에 달하는 긴 여정을 떠난다고 한다. 때론 비바람을 뚫고, 때론 뭉게구름과 푸른 하늘을 벗 삼아 그네들이 살 곳을 찾아 힘찬 날갯짓을 한다. 그들에게는 늘 선택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자칫 이동 경로를 벗어나기라도 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느리지도 않은 일정한 속도로 원하는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거기에는 늘 긴장이 따른다.
또 스스로 바람의 방향과 속도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하고 힘을 적절히 배분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사람 사는 이치와 하등 다를 게 없는 철새들의 생존법칙은 우리에게 교훈과 지침으로 다가온다.
옛 어른들은 새에 대해 유난히 애착이 강했다. 전설이나 속담에 새가 자주 등장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학같이 건강하게 살라’, ‘원앙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학(두루미)은 동양화나 도자기, 병풍 따위의 예술작품에서 많이 볼 수 있고, 십장생 중 하나로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새이기도 하다. 효도의 상징인 까마귀, 흥부전에 나오는 박씨에 얽힌 제비 이야기 등도 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겨울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철새들의 대이동을 보기 위해 강 하구와 들판으로 모여든다. 넓은 수면 위로 가창오리와 백조를 비롯한 각종 철새들이 수만 마리씩 떼 지어 앉아 있는 모습은 진풍경 그 자체이다. 특히 일몰 무렵, 하늘을 덮은 가창오리의 군무는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준다.
새 소리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 소리는 뭐랄까, 영혼을 깨우는 소리로 들린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새를 찾아 강으로 산으로 들판으로 바다로 떠나는 것이리라.

- 김청하 수필가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