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천양희 시 「단추를 채우면서」전문-

정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합니다. 출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태어나서 기어만 다니던 아기가 수없는 시도 끝에 드디어 생애 첫발을 내딛는 장면은 가슴 뭉클하고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발길에 따라 삶의 방향이 좌우되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기도 하지요. 어느 길로 가느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며 자신이 택한 길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새해, 새 인생, 새 학년, 새로운 시작을 할 때 자주 듣는 상투적인 말이지만 첫 단추를 잘 채워야 마지막 단추를 제대로 끼울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단추를 잘못 채울 수 있습니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훌륭한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잘못 채운 단추에서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고 자아성찰의 기회로 삼아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되는 것이지요. 반성과 도전이 자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며 커다란 파도를 헤쳐나 갈수 있는 지혜와 투지가 생길 테니까요. 자신의 단추가 제대로 잘 채워졌는지 확인하려면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하듯이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교만을 떨치고 고개를 숙이는 겸손을 배우게 되지요.
매일 입는 옷의 단추 구멍을 찾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정말 힘든 것은 제대로 된 옷 한 벌 입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과 동행하는 진정한 옷 한 벌 입는 것은 인생의 단추를 잘 채우는 일부터 시작되지요. 단추를 채우다보면 간격이 촘촘한 단추 구멍에 속아 잘못 끼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추 구멍은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불편한 단추 구멍을 탓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자동판매기에 동전 몇 개 넣고 즉석에서 뽑아낼 수 없는 것처럼 단추 채우기가 번거롭고 귀찮다고 지퍼 달린 옷만 입고 살수는 없을 테니까요.

- 이병룡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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