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까지만 하더라도 유로존의 해체까지 거론될 정도로 상황이 최악이었다. 하지만 드라기 ECB 총재의 국채매입 시사 발언 이후 시장 분위기가 빠르게 호전됐다. 시장 내 불안감이 완화되면서 각종 금융지표들이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유로존 위기에 대한 잠재적 불안요인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불안요인은 경기침체로 인한 재정 악화다. 당초 예상보다 심각한 경기침체로 인해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 건전화 노력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로존 경제는 작년 2/4분기부터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중이다. 재정위기국들은 물론 독일과 프랑스도 성장 모멘텀이 약화되고 있다. 이러다보니 유로존 국가들은 당초 계획했던 재정적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두 번째 불안요인은 역내 자금흐름의 양극화 현상이다. 현재 재정위기국들의 자금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위기가 최악의 고비를 넘긴 현재 자금흐름의 정상화를 통한 경기회복과 채무상환능력의 확보가 유로존에서 해야 할 중요 과제다.
그동안 유럽은행들이 주요 자금 조달원이었다. 2012년 6월말 현재 5개 재정위기국에 대한 은행의 익스포저 중 유럽이 90%를 차지하고 있다. 국가별로 보면, 프랑스, 독일, 영국 순으로 은행 익스포저가 많다. 유럽은행들이 재정위기국의 자금난 해소에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은행 자금이 재정위기국에 계속 유입됐으나 리먼 사태를 계기로 은행 익스포저가 크게 줄었다. 특히, 그리스發 재정위기가 시작된 2009년 말부터 은행들은 대출 및 투자자금을 본격 회수하였다. 2012년 6월 현재 5개 재정위기국에 대한 은행 익스포저는 최고치 대비 48% 수준까지 감소한 상태다.
은행 자금의 정부부문 유입은 국채 매입을 통해 이루어진다. 위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은행들이 재정위기국의 국채를 대거 매입하였으나, 채무위기가 불거지자 국채를 대거 매각하였다. 그 결과 은행의 재정위기국 국채 보유액은 2012년 6월말 현재 2,840억 달러로 줄었다. 특히 그리스와 이탈리아 국채 보유액이 크게 줄었다.
유로존 위기 해소를 위해서는 자금흐름의 양극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은행 구조조정과 은행동맹을 통해 은행시스템의 신뢰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 재정위기국들은 은행 구조조정을 신속히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로존 차원에서는 은행동맹 완성을 위해 부실은행 정리기구 설립과 단일 예금보호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둘째, 민간부문에 대한 은행 자금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은행의 담보 요건 완화와 함께 LTRO(3년 만기 저리대출) 상환만기 연장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셋째, 은행의 자금중개기능이 활성화되려면 ECB의 무제한 국채매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은행이 본연의 임무인 자금중개기능에 집중할 수 있어야 민간부문이 활력을 되찾아 경기회복도 앞당길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은행의 국채매입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회원국 정부가 ECB의 무제한 국채매입정책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유로존 위기는 다양한 정책 대응에 힘입어 최악의 고비는 넘겼다. 하지만, 경기침체로 인한 재정 악화와 자금흐름의 양극화로 인해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재정위기국의 자금부족 문제가 치유되지 않고서는 위기의 근본 해소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은 유로존 위기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사태 추이를 계속 주시하되, 위기의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