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 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이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 조오현 시, 「아지랑이」전문 -
‘에너지 보존의 법칙’ 즉, 열역학 제1법칙에 따르면 우주 안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불변하며 그 질량은 일정하고 단지 형태만 바뀌는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물질은 허무이며 그 허무가 곧 물질이라는 것이지요. ‘내 평생 헤매어 찾아 온 곳이 절벽이고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라니’ 허무하고 망연자실 하십니까?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나 니체의 허무주의는 현실세계와 생존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보면서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각기 다르게 주장하였습니다.
최근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저술한 미국 예일대 철학교수인 셀리 케이건(Shelly Kegan)은 죽음의 본질을 이해하면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염세, 허무, 죽음은 삶의 본질일 수는 있겠지만 생의 의미나 작동원리는 분명 아닙니다.
아지랑이는 빛의 굴절에 의해 보이는 신기루 같은 것입니다. 빛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삶의 가치관에 따라 그 생의 굴절률도 달라져 어떤 사람은 절망의 빛을 보고 어떤 사람은 희망의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라 하여도, 평생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 하여도 세상만사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오니 그리 절망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 이병룡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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