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태자씨는 최근 개명한 후 매일매일이 즐겁다. “여태 자냐?”라고 놀림당하는 건 하루이틀 된 일이 아니다. 놀림 정도야 참을 수 있다. 그런데 하는 일마다 악운이 끼는 건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 고민 끝에 개명한 그. 예쁜 이름으로 바꾸고 나니 하는 일도 잘되고 누가 이름 불러 주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 강도년씨는 고교시절 이름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를 잊지 못한다. 하굣길 버스 안에서 잠이 든 그. 친구들이 그를 깨우려고 이름을 부르는 순간 버스 안은 아수라장이 됐다. “강도야!” 그의 별명이 이름 앞 두 자인 ‘강도’였던 것. 청소년기엔 개명을 깊이 고민했지만 지금도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으로 살고 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모든 사람이 이름을 빨리 기억해줘 오히려 행복하다.

‘16만5924’. 2011년 법원에 접수된 개명 신청 건수다. 최근 10년간 누적된 개명 신청 건수는 100만 건을 넘어섰다.
2005년 11월 대법원이 “범죄를 은폐하거나 법적 제재를 회피할 의도가 없다면 원칙적으로 개명을 허가해야 한다”고 판결한 이후 이름을 바꾸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 것.
최근 개명한 이름을 살펴보면 김치국, 변분돌, 김하녀, 이아들나, 경운기, 방기생, 홍한심, 서동개, 소총각, 강남제비(여자), 방귀녀, 피바다, 조까치, 엄어나, 강한힘, 백김치, 이매듭, 방극봉, 마진가, 김개년, 석을년, 임신중 등이 있다.
최근 한 지상파방송 오락 프로그램에는 이름이 아라비아 숫자인 한 여성이 출연했다. 자신의 이름을 ‘이0’이라고 밝힌 여성은 이름 때문에 겪은 불편함을 토로했다. 아라비아 숫자 0(영)인 이름 탓에 모든 전산시스템에 이름이 인식되지 않아 인터넷 사이트 가입조차 쉽지 않다고.
심지어 그의 명의로 등본을 뗄 수도 없어 남편이나 아버지 이름으로 등본을 뗀다.
개명을 신청하는 방법은 다소 복잡하다. 주소지 가정법원(제주도의 경우 제주지방법원)에 개명허가 신청서를 제출해야 진행된다. 이때 가족관계증명서 등 기본적인 서류와 경찰서에서 발급해주는 범죄경력조회서도 필요하다.
미성년자의 경우는 부모가 대신 신청할 수 있다. 개명하려는 이유에 대해 정확하고 자세히 써야 허가 가능성이 높다.
개명 신청 시 비용은 법원에 신청할 때 정부수입인지 1000원과 송달료 3190원짜리 5만원 등 1만7000원 정도 든다. 법무사를 통할 경우엔 난이도에 따라서 20만원 내외가 소요된다.
개명 이유도 과거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예전에는 특이한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하던 사람들이 개명했다면 지금은 인생역전을 위해 개명하는 사례가 많다. 우리네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이유다. 경제가 어려워지다 보니 이름이라도 바꿔 잘살아 보겠다는 생각인 듯하다.
성명학 전문가들은 “우리 조상들은 ‘이름’이 운명을 이끈다고 여겼다. 때문에 아이의 이름을 짓거나 개명할 경우 단순히 좋은 이름이 아닌 각 개인의 사주에 맞춰 지었다”며 “이름은 한 사람의 일생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치므로 신중하게 지어야 한다”고 전한다.
세대별로 선호하는 이름도 바뀌었다. 대법원이 펴낸 ‘역사 속의 사법부’에 따르면 1948년생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이름은 여성은 ‘순자’(5636명), 남성은 ‘영수’(942명)였다. 그러나 2008년생의 경우 여성은 ‘서연’(2375명), 남성은 ‘민준’(2039명)이 1위다.
또 1970년대까지 여성의 이름 끝에 가장 많이 쓰였던 ‘자’, ‘숙’, ‘희’자는 거의 사라지고, 대신 성별을 구별하기 힘든 중성 이름이 유행하고 있다.
눈에 띄게 특이한 이름들도 많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이름은 ‘박하늘별님구름햇님보다사랑스러우리’씨로 17자다. ‘황금 독수리온세상을놀라게하다’, ‘김온누리빛모아사람한가하’, ‘박차고나온놈이샘이나’, ‘하늘빛실타래로수노아’ 등도 범상치 않은 이름이다.
이중 국적자 가운데 가장 긴 이름은 ‘프라이인드로스테쭈젠댄마리소피아수인레나테엘리자벳피아루이제’씨로 무려 30자다.
성명학 전문가들은 “예전에는 놀림감이 되는 등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개명을 신청해도 허가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우선시해 개명하는 게 쉬워졌다”며 “호적에 올릴 수 있는 이름은 최대 다섯 글자”라고 말했다.

- 노경아 jsjys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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