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이 완연하다. 바야흐로 연초록 세상, 만물이 힘차게 일어서고 있다.
여기는 영산강이 바라보이는 나주의 한 들판. 발목까지 자란 보리가 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춘다. 누웠다가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보리 물결 너머로 은빛으로 반짝이는 영산강이 S자로 휘우듬히 뻗어 있다. 그 끝을 향해 도란도란 흘러가는 강줄기가 눈이 부시다.
넉넉하고 다정다감한 물길에게 인사를 건넨다. 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한 가닥 물길의 원경(遠景). 침묵에서 깨어난 강이 크게 소리치고 있다. 생명들의 자맥질 소리가 귓전에서 맴돈다. 강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가슴으로 듣는다. 바위를 타 넘고 풀잎을 적시고 들과 산을 휘돌아 여기까지 달려온 강물의 힘. 강 위로는 뭉게구름이 흘러간다. 천천히 동쪽으로 밀려가는 구름 사이로 햇살이 숨바꼭질을 한다. 강을 따라 목선 한 척이 미끄러져간다.
그동안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산수미(山水美)를 숱하게 봐 왔건만 영산강은 또 다른 진경(眞景)으로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영산강을 직접 보기 전에는 이렇게 아름다운지 미처 몰랐다. 먼 길을 달려오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영산강은 ‘영상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섬진강이 아름답다고 다들 말하지만 영산강도 그에 못지않음을 여기 와서 똑똑히 본다. 섬진강이 유순하고 부드러운 여성의 이미지라면 영산강은 믿음직하고 넉넉한 남성의 표정을 보이고 있다.
강 옆으로는 푸른 보리밭이 펼쳐져 있다. 어디선가 종달새 우짖는 소리가 들리고 인기척을 느낀 참새떼가 강가로 포르르 날아간다. 파란 하늘과 연녹색 보리밭 그리고 느리게 흘러가는 강의 조화가 참으로 멋스럽다. 강바람 들바람의 맛이 다르다. 코끝으로 와락 달려드는 그 맛을, 곱게 단장한 여인의 옷자락에서 풍기는 원초적인 향기라고 생각해 본다. 가장 한국적인 풍치 앞에서 나는 문득 시인이 된다.
영산강은 물을 가득 담고 있다. 며칠 전 내린 단비로 자연이 생기를 되찾고 있다. 비를 머금은 밭작물들과 방죽의 풀잎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맘껏 호흡을 한다. 저 한강이나 금강에 견주어 물빛이 맑지 않고 강폭이 4∼5미터에 불과한 데다 수심도 1미터가 채 되지 않아 강다운 멋은 한결 덜 하지만 들판과 산을 휘감고 돌아가는 강줄기며 강변 풍경은 정말이지 잘 그린 그림 한 폭을 보는 것 같다.
누구나 이곳에 오면 강을 앞 배경으로 둔 곳에서 한번쯤 살아보고픈 마음이 들지 않을까. 일찍이 ‘택리지(擇里志)’의 저자 이중환은, “바닷가에 사는 게 강가에 사는 것만 못하고, 강가에 사는 게 시냇가에 사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이처럼 강은 사람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일찍이 문명을 건설한 곳도 강 주변이었다. 강을 따라 집들이며 위락시설이 들어섰고 길이 뚫렸으며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원래 영산강은 밀물 때면 바닷물이 역류해 나주읍 부근 영산포까지 밀려들었다고 한다. 이때를 이용해 목포에서 황포돛을 단 배들이 내륙으로 들어왔고, 반대로 물이 빠지면 바다로 다시 나가곤 했다. 그 때의 풍경을 고스란히 되살릴 수는 없어도 분위기를 약간 띄워주는 것만으로도 옛 흥취를 느끼게 되니 기분 좋은 일이다.

- 김청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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