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정책 불확실성 여전…경기회복 섣부른 낙관 금물

2008년 9월의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만 4년이 넘게 지났지만 미국경제는 아직 안정적인 성장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경제상황이 불안할 때에는 정부가 지출을 늘려야 하겠지만 지금 미국의 상황은 여의치 않다.
잘 알려진 대로 2012년에는 2013년부터 세금이 크게 늘어나고 재정지출이 줄어 경기가 급락할 거라는 재정절벽의 공포가 미국경제의 리스크로 크게 부각됐지만 다행히 의회가 2013년 초 부유층 증세에 합의하면서 재정절벽 위험은 가까스로 피했다. 하지만 이 합의에서 2개월 연기했던 시퀘스터(Sequester), 즉 재정지출 강제감축 조치는 정치권의 협상 부진으로 3월부터 발효되고 말았다. 이처럼 재정이 악화된 상황에서 정책방향을 두고 정치권의 이견도 심각해서 재정정책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미국 정치권이 재정정책을 두고 대립하는 것은 정부와 시장의 역할에 대한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시장경제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철학에 따라 큰 정부를 선호하는데, 이 철학은 재정정책에서는 부유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서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정부의 인프라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으로 연결된다.
반면, 공화당은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해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다양한 경제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철학에 따라 세금 인상에 반대하고 재정지출을 줄여 작은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상반되는 경제철학을 배경으로 최근 미국 정치권의 재정정책 협상은 크게 세 가지 이슈에 집중되고 있다.
첫째, 세금 추가 인상 문제이다. 2013년 초에 연소득 25만 달러 이상 가구에 대한 증세를 주장하던 민주당과 모든 소득계층에 대해 감세 유지를 주장하던 공화당이 한 발씩 양보해 연소득 45만달러 이상 고소득층 가구에 대해서만 소득세율을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은 이 조치만으로는 재정건전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세금을 더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공화당은 세금 추가 인상에 반대한다.
둘째, 시퀘스터 문제이다. 시퀘스터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각 예산항목의 지출을 일률적으로 삭감하는 조치이다. 재정지출은 그 형태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데, 시퀘스터는 이런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당초부터 가능하면 피해야 하는 ‘나쁜 정책’으로 계획된 것이었다. 따라서 양당은 모두 시퀘스터를 현재의 모습대로 유지하는 데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역시 수정 방향에 대해서는 각 당의 재정정책의견 차가 크기 때문에 조정이 필요하다.
셋째, 의료개혁정책에 대해서도 대립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이후 의료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해 2010년 의료개혁법을 제정했다. 의료개혁은 오바마 대통령이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하는 정책인데, 핵심규정인 의료보험 가입 의무화, 의료보장 대상 확대 등은 2014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그런데 고령인구 증가와 저성장 등으로 의료보장에 따른 재정부담이 계속 증가할 전망이어서 공화당은 의료개혁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물론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재정부담을 고려해서 정책을 다소 수정할 여지는 있다.
현재 미국 의회는 상원에서는 민주당이, 하원에서는 공화당이 다수당인 상황이다. 5월18일이 시한인 연방정부 채무한도 증액 협상이나 2014년 예산안 심의 등이 재정정책 협상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의 정치상황을 고려할 때 이들 협상에서 장기적인 재정정책 방향에 대한 대타협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는 낮은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 채무한도 증액이 필요한 2013년 5월까지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재정정책에 대한 논란과 불확실성이 지속될 전망이다.
최근 미국은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일부 경제지표가 호전되면서 낙관론이 확산되고 있지만, 시퀘스터가 시행된 3월 이후의 지표들은 다시 후퇴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미국경제 나아가서 세계경제의 회복에 대해서 보다 신중하게 접근하는 한편,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위험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박현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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