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자 부품을 제조하는 한 중소기업은 제품을 납품하는 대기업으로부터 원가절감을 위해 이 회사를 포함한 4개 중소기업에 납품단가를 최고 24.4%까지 인하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회사는 울며 겨자먹기로 납품단가를 내리기로 했지만 원청업체가 적용 시점을 일방적으로 합의일보다 23개월 앞당겨 적용하는 바람에 큰 손해를 입게 됐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처럼 대기업 원청회사의 부당행위로 중소기업이 손해를 입는 사례가 시정될 전망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의 납품단가 조정협의권 부여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하도급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최근 통과했기 때문이다. 이번 하도급법 개정안은 원자재가 급등 등 납품단가 인상 요인 발생시 업종별 협동조합이 조합원을 대표해 원청 대기업과 납품단가를 협의할 수 있도록 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협의권을 부여했다. 또 기존의 기술탈취에만 적용됐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부당 납품단가 인하 △부당 위탁취소 △부당 반품 등으로까지 확대됐다.

하도급법 개정으로 대기업의 부당행위에 대한 중소기업의 보호수단이 생기게 된 것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한 중소기업계는 크게 환영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제1호 법안이 통과됐다는 상징적인 의미 외에도 그동안 대기업의 횡포로 어려움을 겪어왔던 중소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이 개정법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크게 세가지 부분으로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중소기업협동조합에 납품단가 조정 협의권을 부여했다.
협동조합이 수급사업자의 신청을 받아 원사업자와 직접 납품단가 조정을 협의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된 것. 현재 조합은 수급 사업자를 대신해 원사업자에게 납품단가 조정 신청만 할 수 있고, 협의는 수급 사업자가 직접해야 한다. 수급사업자는 원사업자와의 거래단절 등의 우려로 협의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므로, 납품단가 조정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조합에 협의권을 부여했다.

중소기업계 숙원 이뤄져

또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가 확대 됐다. 하도급법상 징벌적 손해 배상제 대상이 부당단가 인하, 부당발주 취소 및 부당반품으로 늘어났다.
현재 하도급법 규정(기술탈취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및 미국 등 외국 사례를 고려해 징벌적 배상금액은 ‘3배 이내’로 규정했다.
배상액을 산정할 때 원사업자의 경제적 이익의 취득규모, 벌금 및 과징금 부담액, 재산상태, 피해구제 노력의 정도 등을 고려하여 배상액이 합리적으로 산정되도록 했다.
마지막으로 보복조치에 대한 벌칙을 강화했다.
수급 사업자의 신고나 납품단가 조정 신청 등을 이유로 보복조치를 할 경우 현재 1억5000만원의 벌금을 3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했다.
이는 지난 2007년부터 중소기업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내용들이다.
지난 2007년 중소기업중앙회가 서병문 수석부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납품단가현실화특별위원회를 구성, 원자재가격과 납품단가를 연동하는 납품단가연동제 도입을 요구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납품단가를 현실화해달라는 중소기업계의 정당한 요구는 이후 경제의 선순환을 저해하는 △거래의 불공정 △시장의 불균형 △제도의 불합리 등 이른바 ‘경제 3불’문제로 확대됐다. 특히 납품단가 현실화와 납품단가 후려치기는 ‘거래의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 지적돼 왔다는 점에서 이번 하도급법 개정안은 그 첫단추를 끼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3월 중소기업중앙회가 대기업과 거래 관계가 있는 중소 제조업체 2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11년을 100으로 했을 때 최근 2년 동안 재료비, 노무비, 경비는 4.3~6.7% 증가한 반면 납품단가는 0.2~0.6%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또 조사 대상 중소 제조업체의 54%는 납품단가가 “적정하지 않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 “납품 중소기업 간의 무리한 가격 경쟁으로 인한 납품가격 인하 불가피”(32.4%)라는 답도 있었으나 “원자재 상승 요인이 있었으나 (대기업의) 가격 인상 동결 때문”(28.7%)이라는 답도 많았다.
지난 2009년 4월 원재료의 가격 변동에 따라 하도급 대금의 조정이 불가피한 경우 수급사업자가 원사업자에게 납품단가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납품단가 조정 협의 의무제가 도입됐지만 이 제도는 유명무실한 상황이 됐다.

제도 실효성 제고 힘 모아야

단가 인상 요인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들은 거래 단절을 우려해 납품단가 인상 요구를 주저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11년 3월 하도급법 개정을 통해 수급사업자뿐만 아니라 중소기업협동조합에도 납품단가 조정 신청권을 부여하는 제도 보완이 일부 이뤄졌지만 2011년 6월 시행 이후 2년 동안 중소기업협동조합의 조정 신청 실적은 단 1건에 그쳤다.
납품단가 조정 신청권을 조합에 부여했으나 실제 협상 테이블에는 해당 중소기업이 직접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을 상대로 거래 단절 등 보복을 감수하면서 일시적 이익을 위해 납품단가 조정을 신청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어려움은 협동조합이 조합원을 대표해 납품단가 조정협의를 할 수 있게 돼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계는 하도급법 개정안이 통과된 만큼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후속조치가 신속히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당단가인하 등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되는 사건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조사결과가 피해자의 민사소송에 활용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며 또 “납품단가 조정협의제도가 실효성 있게 작동되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한편, 하도급법 시행령 등에서 협의 신청요건과 조정절차를 설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실효성 있는 제도 운영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등과 적극 협의해 나가는 한편 향후 대기업과 납품단가를 협의하게 될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하도급법 개정으로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바로잡을 수 있는 수단이 생겼다는데 의견을 같이하는 한편, 협동조합들도 원가분석 등을 통해 대기업과의 단가협의를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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