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리에 살면서 내 가장 즐거운 날은
밤새 비 내려서 계곡물 넘치는 때
그 소리 종일 들으며 귀를 씻는 일입니다
어떤 때는 귀 혼자서 고향 냇가 다녀도 오고
파도소리 그립다며 동해 나들이도 즐기지만
이날은 두 귀 하나 되어 꼼짝도 않습니다
수유리에 살면서 안빈安貧이란 옛말을
새록새록 곱씹을 때도 바로 이런 날입니다
당신도 들었으면 해요, 귀 씻는 저 물소리
- 박시교 시,「수유리에 살면서」전문 -

시냇물에 귀를 씻어본 적 있나요? 중국고사 중에 ‘영천세이(潁川洗耳)’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堯)임금으로부터 임금의 자리를 물려주겠다는 말을 들은 허유는 영천에서 귀를 씻고 산으로 들어가 살았는데 요임금이 재차 장관직을 맡아달라고 이야기하자 허유는 또 다시 귀를 씻었으며 이 광경을 본 소부라는 사람은 더러운 귀를 씻어낸 더러운 물을 자신의 소에게 먹일 수 없다며 소를 강 상류로 끌고 올라가 위쪽의 깨끗한 물을 먹였다고 합니다.
수유리의 지형이 배산임수의 명당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시인은 계곡 물소리에 귀를 씻고 안빈이라는 말을 새록새록 곱씹으며 소박하고 욕심 없는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이 엿보입니다.
생전에 법정스님은 가난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참된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것이 안빈낙도(安貧樂道)이며 우주의 기운은 마치 자력과 같아서 우리가 어두운 마음을 지니고 있으면 어두운 기운이 몰려오고 우리가 밝은 마음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온다고 하셨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거나 내각을 새로 조각할 때, 귀를 쫑긋 세우고 하루 종일 전화기 벨소리만 기다린다는 사람이 많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능력이 뛰어나고 인격적으로 존경받으며 국가에 봉사하고 헌신할 수 있는 진정한 역량을 갖춘 사람이라면 애타게 전화를 기다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현대 산업경제사회에서 진실로 세이(洗耳)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가끔은 계곡 물소리로 귀를 정화시키고 마음을 정결케 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여겨집니다. 필자는 이 짧은 시를 여러 번 읽으면서 귀를 쭈뼛 세우고 계곡 물소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니, 산으로 달려가 계곡물에 당나귀 귀를 흠뻑 담아 보고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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