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바다를 마주보고 서 있는 하얀 등대. 문득 삶이 힘들고 외로울 때, 나는 등대를 떠올리며 위안을 얻곤 한다. 내가 본, 여러 등대의 잔영(殘影)이 아련하게 남아 있다. 내가 찾은 바닷가(섬)에 오롯이 서 있던 이름 없는 등대는 봄바람 살랑살랑 부는 지금도 뱃길을 안내하고 있겠지. 우연히 마주친 등대와 말 없는 대화를 나누었던 숱한 시간들.
동·서·남해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등대는 바다, 하늘, 절벽과 어우러져 내 마음에 잔잔한 그리움을 심어주곤 했다.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지만 태초에 거기 있었던 것처럼 순수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영상과 지면으로 봐왔던 등대를 두 눈으로 보는 순간, 나는 떨림과 흥분으로 묘한 기분이 되었다. 왠지 모를 센티멘털리즘이 밀려와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지치고 찌든 내 심신은 파도와 바람에 실려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내 앞에 우연히 나타난 등대는 당당하고 우람했다. 저 등대는 모진 비바람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와 칠흑같이 컴컴한 어둠을 밝히며 바다의 길잡이 노릇을 충실히 해왔을 것이다. 고요하고 무서운 밤바다에서 어부들은 등대의 한 줄기 빛에 기대어 안전조업을 했을 것이며. 거친 바다를 헤쳐 가는 배들에게 등대가 없다면 얼마나 외롭고 위험할 것인가. 
이정표 하나 없는 망망대해에서 등대는 어부들의 두려운 마음을 가라앉혀주는 고마운 일꾼이다. 등대 불이 꺼진 캄캄한 바다, 거기에다 비바람에 파도까지 몰아치는 어둠 속은 상상만으로도 소름 끼친다. 등대는 그런 극한 상황에서 한 줄기 희망이요 구원의 빛이다. 등대와 바다는 동격이다.
아무리 세상이 뒤바뀌고 문명이 발달해도 등대는 늘 그 자리에서 어둔 밤바다를 밝혀줄 것이다.
등대를 볼 때마다 저 수평선 너머의 아득한 세계를 그려보곤 했다. 바다는 등대가 있음으로 해서 그 존재 가치가 한층 빛난다. 두 아득한 풍경은 형제처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고독을 안으로 삭이며 견뎌온 숱한 나날들. 등대는 그러고도 불평불만이 없다. 등을 끈 낮에도, 등을 켠 밤에도 등대는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바다와 신호를 주고받는다.
등대의 실체(역할)를 모르는 사람들은 등대를 ‘낭만’이나 ‘서정’ 따위의 감성적인 구조물로 생각한다. 이방인들에게 등대는 눈요깃거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등대지기에겐 삶 그 자체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외딴섬 등대지기의 삶은 외롭고 고달프다. 오죽했으면 ‘도 닦는 직업’이라거나 ‘도둑이 찾아와도 반가워한다’고 했을까. 그래도 등대원은 긍지와 보람을 먹고 사는 신성한 직업이다. 
등대는 통신, 전기 등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100년이 훨씬 넘은 등대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파란 많은 역사와 닿아 있다. 등대가 사라진다는 건 우리 역사와 문화가 사라진다는 걸 의미한다. 등대의 시초는 기원전 280년에 만들어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항의 파로스 등대로 알려져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드는 이 등대의 높이는 135m. 그 당시 나무와 송진을 태워 빛을 밝혔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해안에 있는 등대는 모두 1천 개가 넘지만, 유인 등대는 43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유인 등대도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차 무인 등대로 바뀌고 있다. 가장 높은 등대는 인천 선미도 등대로 높이가 175m에 이르며, 불빛이 도달하는 거리가 가장 긴 것은 포항 호미곶 등대로 43㎞에 달한다.
팔미도(1903), 부도(1904), 거문도(1905), 우도(1906), 호미곶(1908), 어청도(1912), 마라도(1915)…. 이들 섬에 있는 등대는 1910년을 전후해 만들어졌다. 역사가 깊은 등대들은 대부분 인천 앞바다에 있는데 이는 인천이 우리나라 최초의 개항장이었기 때문이다. 
인천 팔미도 등대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로 알려져 있다. 1903년 6월 1일 팔미도 꼭대기(해발 71m)에 세워졌다. 비록 일본의 압력에 의해 외국인 기술자의 손으로 세워졌지만 첫 번째 우리나라 등대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남다르다.
군산여객선터미널에서 3시간 20분 정도 배를 타고 가야 다다르는 어청도.  군산항과 우리나라 서해안의 남북 항로를 이용하는 모든 선박들의 생명줄이자 신호등으로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전국에 있는 등대와 주변 관광지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대한민국 등대여행)을 선보였다고 한다. 이른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즈음, 등대를 찾아 스트레스와 더위를 달래봄은 어떨지. 일부 등대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룻밤 머물 수 있는 시설도 마련해 놓았다. 
등대는 바다의 길잡이인 동시에 삶의 치열한 현장이며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삶의 진정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문득 삶이 외롭고 힘들 때 주저 없이 등대로 달려가 볼 일이다.
김청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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