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무도 NO라고 말하지 않는가

“한잔 더 해야지?”, “노래방에서 한 곡조 뽑아야지 않아?”
직장인들의 회식 때면 누군가 이렇게 바람을 잡아서 2차, 3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때 대개의 경우 가기 싫어도 하는 수 없이 따라간다. 먹기 싫은 술을 마시고 취해서 다음 날 힘들어한다. 그런데 다음 번 회식에도 거의 같은 풍경이 연출된다. 직장인이라면 회식 때 늘 경험하는 일일 것이다. 왜 아무도 NO라고 말하지 않는가?
<생각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그러한 심리 상태를 치밀하게 파고든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애빌린 패러독스(The Abilene Paradox)’이다. 이 책은 출간 당시 미국에서 ‘애빌린 패러독스’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단편 영화로도 제작되기도 했다. 미국의 경영학자 제리 하비 (Jerry B. Harvey) 가 쓴 이 책은 ‘누구도 동의하지 않은 합의’가 일어나는 본인의 체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1974년 여름, 하비 박사는 텍사스의 처가를 방문했다. 장인은 모처럼 찾아온 사위의 방문이 반가웠던지 “우리 애빌린에 가서 외식이나 할까?”라고 제안한다. 하비 박사는 왕복 170킬로미터를 운전하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장모님이 좋으시다면” 하고 동의했다. 섭씨 40도의 날씨, 16년 된 고물차 안은 너무 더웠다. 용광로 같은 불볕더위와 먼지바람을 무릅쓰고 사막길을 갔는데 식사는 형편없었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불평들이 쏟아져 나왔다.
장모가 “집에 있고 싶었는데 애빌린에 가자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섰다”고 투덜거렸다. 하비 박사는 “나도 다른 사람들이 원해서”라 말했고, 그의 아내도 “이렇게 더운 날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자 장인이 입을 열었다. “그냥 모두 따분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결국 아무도 원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애빌린에 다녀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애빌린 패러독스’다.
이책은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생각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 △현실에 길들여진 사람들 △무조건 복종하는 사람들 △절대로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 △영혼을 파는 사람들 △변명하는 사람들 △서로 돕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눈치 보고 묻어가는 개인의 심리현상을 철저히 파헤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애벌린 패러독스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조직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굴러가게 만드는 ‘공모의 상호작용’과 ‘권위에 대한 맹종’이 그것이다. 첫째 ‘공모의 상호작용’에 관한 사례는 앞에서 예를 든 회식 때 일어나는 일 같은 일들이다. 둘째 ‘권위에 대한 맹종’에 대한 사례로 저자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들고 있다.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재판과정에서 “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며,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저자는 “유대인 처형 부대의 대원들은 아무런 제약 없이 그 일을 그만둘 수 있었다”다고 밝히면서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의 연구를 인용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 친위대원 중에 유대인 처형을 거부했다고 사형당한 예는 단 한 건도 없었다”면서 이 전형적으로 성실하고 평범한 독일인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으며, 그 놀라운 ‘사유능력의 부재’가 바로 유대인 학살이라는 끔찍한 폭력의 진짜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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