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은행 부실 여전…구조조정 과정 예의 주시해야
지난 9개월 동안 유럽 금융시장이 비교적 평온을 되찾아 최악의 위기가 끝났다는 낙관론마저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시장에서는 유로존 위기가 다시 재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은행부실 확대와 앞으로 있을 은행 구조조정이 유로존의 최대 리스크요인 중 하나로 꼽히기 때문이다.
실제 유럽은행들의 무수익여신(NPL) 비율은 경기침체 심화로 2007년 12월 2.6%에서 2012년 6월 8.4%로 상승했다. 특히 이 기간 중 스페인의 NPL비율은 7배, 이탈리아는 2.5배나 상승했다. EU 국가들은 2008년 9월부터 2011년 12월에 은행자본 확충을 위해 EU GDP의 2.4%(총 2880억유로)에 이르는 정부재정을 투입했다. 그 결과 현재 독일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한 유로존 국가들은 정부재정이 극도로 취약한 상태다.
유로존 전체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2008년 70%에서 2012년 90%로 급등했다. 이러다 보니 재정 취약국들은 독자적인 은행 구조조정이 어려워 EU 차원의 재정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하지만 남유럽 국가들의 기대와 달리 독일 등 북유럽 국가들은 재정 지원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지난 6월28일에 EU 재무장관과 정상들은 그동안 합의점을 찾지 못했던 ‘은행 회생 및 정리 지침(Bank Recovery and Resolution Directive; BRRD)’에 최종 합의했다. 이 지침은 은행 구조조정 시 적용될 손실부담원칙을 담고 있는 법안이다. 이 법안이 중요한 이유는, 2013년 3월 키프로스 구제금융 지원 조건으로 은행 구조조정을 추진할 당시, 예외적으로 처음 적용했던 손실부담원칙을 EU차원의 지침으로 제도화해 앞으로 은행 구조조정의 원칙으로 활용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손실부담 순서(burden sharing scheme)이다. 손실부담원칙의 핵심은 은행 회생 및 정리 과정에서 정부재정과 EMS의 구제금융자금 투입(bail-out)을 최소화하는 대신 민간투자자와 고액 예금자에게 우선적으로 손실을 부담(bail-in)시키는 것이다.
은행 구조조정 시 적용되는 손실부담 순서를 보면, 은행 주주와 채권 보유자가 손실을 맨 먼저 부담하고, 그 다음으로는 10만유로 이상의 고액 예금자로서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손실을 부담하게 된다. 그 이후에는 회원국 구조조정 기금과 회원국 정부(재정),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는 유럽안정화기구(ESM)가 손실을 떠안게 된다. 반면 10만유로 미만의 소액 예금자와 중소기업은 법으로 보호받게 된다.
최종대부자로서 유럽안정화기구(ESM)는 총 5000억유로 중 최대 600억유로의 한도 내에서 엄격한 조건 하에 은행 지원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올해 말까지 유럽의회가 법안을 승인할 경우 이 지침은 5년 후인 2018년부터 공식 발효될 예정이다. 하지만 손실부담원칙은 ECB가 단일 은행감독 권한을 행사하는 2014년 하반기부터 실제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2014년 상반기에 140여개 대형은행에 대한 자산재평가 작업과 은행 스트레스테스트가 실시되면 이를 토대로 은행 구조조정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은행손실 부담원칙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첫째, EU의 은행 구조조정이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고 원만히 추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타국의 은행부실을 메우기 위해 자국의 재정이 투입되는 것을 꺼리는 독일 등 북유럽 국가들의 주장이 관철된 법안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행부실 규모가 크고 재정여력이 취약한 국가들은 독자적인 은행 구조조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손실부담을 우려한 주주 및 채권 보유자들과 고액 예금자들이 은행 구조조정이 본격화되기 전에 보유 주식과 채권을 팔아치우거나 예금을 인출할 경우, 시장 불안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시작될 경우 글로벌 자금이 유로존에서 대거 이탈할 수도 있다. 만약 EU차원의 선제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유로존은 2012년 상반기와 유사한 은행위기에 처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정부와 기업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더불어, 은행 회생 및 정리 지침(BRRD)의 법제화와 유럽은행 구조조정 작업의 전개상황을 예의주시, 유로존의 은행위기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해야겠다.

김득갑(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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