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한약재로 만든 마약중독치료제가 美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안정성을 공식승인 받고 미국 약전(藥典)에도 정식으로 올라 본격적인 세계시장 진출에 나서게 됐다.
FDA가 공인한 이 약은 말레이시아 교민인 이재형씨(49·사진)가 14년간에 걸쳐 개량한 것으로, ‘생존’을 뜻하는 영어단어 Survival에서 이름을 따온 ‘비바 캡슐’이라는 약이다. 인삼과 장약, 익모초, 감초 등 얼핏 평범해 보이는 10여가지 순수 한약재로 만들어졌다.
이씨는 90년 고향인 울산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아편중독에 특효가 있다’는 한방약 처방전을 한 노인으로부터 받고, 이 노인과 함께 시약을 만들어 당시 보사부와 여러 의료기관에 임상실험을 의뢰했으나 아무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 노인이 죽은 후 이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로 시약 1만 캡슐을 들여와 말레이사아 정부에 대해 설득에 나섰다.
그러기를 3년. 말레이시아 국립의료원 정신의학팀이 마약환자들을 상대로 첫 임상실험에 나선 결과 마약중독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됐다. 이후 이씨는 말레이시아 마약청과 의료진들의 적극적인 협조아래 약의 개량에 힘을 썼고 드디어 97년 비바캡슐은 마약과의 전쟁에 심혈을 기울이던 말레이시아 마약청으로부터 ‘공식 치료제’로 지정 받는 쾌거를 이뤘다. 이 약은 말레이시아 14개 마약치료재활원에 공급 됐고 이같은 사실은 현지 말레이어, 중국어, 영자신문 등에 대서특필 됐다.
값싼 마약이 널리 퍼져 고민하고 있던 동남아시아 각국의 정부들은 비바캡슐에 관심을 갖게됐고 샘플 요청 등 많은 의뢰가 이어졌다.

마약중독 치료에 탁월한 효과
그러나 한국과 아시아를 강타한 IMF 외환위기는 말레이시아 정부에도 어려움을 줬고, 말레이시아 정부는 당시 100캡슐에 50만원 가량이던 이 약의 사용을 3년만에 중단시켰다. 말레이시아에서 군납업으로 번 돈을 비바캡슐에 쏟아 넣었던 이씨도 결국 IMF 한파를 비켜서지 못하고 빚더미에 올랐다. 이후 3년간 악전고투하던 이씨는 올해 들어 다시 희망을 보게 됐다.
미국 예일대 출신으로 ‘의존약물’ 전문의인 말레이시아의 마즐란박사가 미국 정부의 마약퇴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이 약을 미국에 소개했고 드디어 지난 2월 미국 FDA로부터 마약중독에 관한 ‘보조 치료제’로서의 효과와 안정성을 인정받는데 성공했으며, 아울러 미국 약전에도 이름을 올렸다.
마즐란 박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비바캡슐이 헤로인 실험에서 뛰어난 효과를 보였으며, ‘히로뽕’(암페타민)과 알콜 중독에도 뚜렷한 효과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헤로인의 경우 84명의 중독환자에게 이 약을 투여한 결과 87%가 마약을 끊었으며, 특히 64%는 완전히 정상생활로 복귀했다는 것. 이 약이 생약인데다가 부작용이 없고 마약중독으로 황폐해진 체력마저 회복시켜 3분의 2에 이르는 중독환자가 정상생활로 돌아 온 것이라고 마즐란 박사는 덧붙였다.

무심했던 한국 정부·기업 지원 필요
그러나 2~3캡슐씩 하루에 5차례 가량 이 약을 복용하면 5일만에 일단 약물의존성이 사라진다는 마즐란 박사의 설명은 미심쩍게 여겨졌다. 그러나 기자의 의혹 어린(?) 생각은 콸라룸푸르에 있는 2곳의 마약중독환자 치료소를 방문한 다음 일거에 사라졌다. 입소문과 언론보도 등을 통해 이 약의 효과를 듣고 싱가폴과 인도네시아에서 원정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년간 중독상태였다는 한 남자 환자는 5개월만에 완치에 이르렀다고 설명하면서, 이제는 중독환자들을 상대로 카운셀러역을 하고 있다고 건강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현재 이 약의 문제는 그 약효가 아니라 가격에 있다. 지난 10년 사이 가격은 4분의 1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한국 돈으로 100캡슐에 23만원이나 된다. 이 약을 통해 중독치료를 해주는 사립 재활원은 4주간 치료과정에 숙식을 포함해 300만원을 받고 있었다.
비싼 약값 때문에 이 사립 재활원에서는 싱가폴에서 온 중국계 여자 환자와 의대생 등 단지 4명의 부유층 자녀들만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마약중독환자가 많은 동남아시아지만 소비시장으로서는 구매력이 너무 작은 것이다.
결국 이 약의 성패는 미국과 유럽 시장에 달려있다. 이제 이 약은 대량생산과 마케팅을 통한 가격인하를 이뤄야만 ‘세계 시장’에 제대로 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 씨의 개인적 노력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이 약의 개발 초기, 무심하기만 했던 우리 정부와 제약업계는 이런 소식을 접하고도 여전히 뒷짐만 지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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