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세린 로션, 폰즈 크림, 도브 샴푸, 클로즈업 치약, 립톤 티…. 이들은 모두 영국 런던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본사를 둔 다국적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가 생산하는 제품이다. 유니레버는 1930년 네덜란드의 마가린 회사 마가린 유니와 영국의 비누 회사 레버 브라더스의 합병으로 탄생했다. 전세계에 17만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거대 기업으로 지난해 매출은 682억달러(약 76조원)에 이른다.
유니레버는 브랜드별로 독립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앞서 유니레버가 보유한 몇 가지 브랜드들의 경우 제품의 이름에 비해 정작 그것을 만든 기업의 이름은 덜 익숙하거나, 의외인 것들이 꽤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유니레버는 58년 전통의 유명 식품회사와 45년 역사의 유명 세제회사의 합병으로 탄생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누를 만들던 회사에서 나오는 마가린, 혹은 마가린을 만들던 회사에서 나온 비누에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 회사의 이미지가 뒤섞여 혼란을 주지 않도록 기업의 이름이 아닌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또한 제품별로 별도의 마케팅 담당자를 두어 세심한 이미지 관리에 나섰다. 즉 기업의 이미지보다는 각 제품들이 가진 고유의 기능과 품질만으로 승부를 하겠다는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대개 인지도가 높은 대기업들은 제품과 함께 기업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것이 일반적인데, 유니레버는 거대한 다국적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립적인 마케팅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전체 기업보다 개별 브랜드 발굴과 확장에 집중하다보니 1990년대에는 보유 브랜드만 1600여개를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렇게 되다보니 기존에 강점이었던 브랜드별 이미지 관리와 전략수립에도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이에 유니레버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하게 된다. 당시 보유하고 있던 1600여개 브랜드를 분석한 결과 전체 매출의 90% 정도는 400여개의 핵심브랜드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전체 자원을 핵심 브랜드 중심으로 재배치하게 된다. 퇴출 대상 브랜드에 대한 마케팅 활동을 중단하고 공장을 폐쇄했으며 핵심 브랜드는 자재 구매, 공급망 등을 통합 재구축하고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그 결과 2000년대 초 유니레버는 400여개의 핵심 브랜드를 지닌 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최근 유니레버는 신흥국시장 공략에 나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 글로벌기업보다는 친근한 현지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심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세련되고 선진화된 기업이미지를 중시하는 글로벌기업에게는 쉬운 선택이 아니었지만 토착형 유통채널 발굴과 세분화된 현지화 전략을 통해 유니레버의 신흥시장 매출은 이미 전체의 56%에 달했으며, 2020년까지 7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유니레버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지속가능경영이다. 그동안 지속가능경영과 같은 사회공헌은 본질적인 기업 활동과는 별개로 이뤄지는 부가적인 의무, 책임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유니레버는 이를 핵심적인 사업전략으로 내재화하고 실질적인 사업성과, 이른바 ‘착한 이윤’으로 연결하는데 성공했다.
CEO인 폴 폴먼은 이런 얘기를 했다. “소비재의 성공은 10%의 전략과 90%의 실행에서 나온다.” 결국 유니레버의 성공은 제품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자사의 전략을 시대적 요구와 지역에 맞춰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었던 강한 실행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것이다.

김근영(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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