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대’아쉬웠던 시대정신
올해 미술계의 가장 기쁜 소식이라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일 것이다. 그러나 경사가 경사로만 기록되기 어려울 만큼 뒷이야기가 끊이질 않고 있다. 국군기무사령부 건물용도 전환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종친부, 사간헌 등의 옛 건물 이전 복원 주장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대립하더니, 공사 도중엔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정독도서관으로 내쫓았던 종친부 건물을 제자리로 앉힌 후엔, 담을 복원하면 장사가 안 된다는 인근 장사꾼들 항의 탓인지 담을 어정쩡한 형태로 남겨놓았다.
대통령의 개관식 참석을 앞두고는 ‘청와대서 일부 작품을 빼라 요구했다’는 보도와 함께 임옥상의 ‘하나됨을 위하여’와 이강우의 ‘생각의 기록’ 등 현실 참여 성향 작품들이 배제됐다.
개관 후에는 ‘자이트 가이스트-시대정신전’참여 작가 38명 중 27명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출신이라며 한국미술협회 등 100여개 미술 단체 회원 350여명이 관장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3개의 개관전은 7000원짜리 통합권을 구입하면 모두 볼 수 있게 했고, 오디오 가이드 기기 대여 비용은 3000원으로 책정됐다. ‘자이트 가이스트-시대정신전’부터 보도록 관람 동선이 짜였는데,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작가 소개는 ‘서울대 출신’의 반복이었다. 이러니 ‘서울대 동문전이냐’는 비난을 들을 만하지 싶었다.
현대 예술 소개에서 외국어, 일반인에겐 낯선 개념어 사용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자이트 가이스트’라는 외국어를 앞세운 것도 아쉬웠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지난 50여년 간 수집해온 소장품 중 시대정신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을 골랐다는데 ‘시대정신’을 어떻게 해석했느냐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일관된, 총체적인 흐름을 읽기가 어려웠다는 이야기다. 50년 수집품을 시대별로 선보이는 게 솔직하고, 또 서울관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도 기여하지 않을까 싶다.
서울관 개관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릴 수 있는 지역인 북촌에 사는 필자로서는 서울관-덕수궁관-과천관을 오가는 셔틀버스가 생긴 것이 기쁘다. 이 버스를 자주 탈 수 있도록, 국립현대미술관이 작가에게는 자부심을 안기는 전시 공간으로, 보통사람에게는 일상 속 미술관 나들이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참으로 어려운 주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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