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반 전 한국을 떠나올 무렵 중소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가 언론에 보도됐다. ‘여건만 된다면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응답이 절대다수를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그것은 노사문제와 정부정책 등 기업운영에 관한 국내 여건이 전보다 악화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여론조사결과는 기업운영도 ‘인간의 삶’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다. 진정한 기업은 생산활동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며 그 생산활동은 소비자에게, 거기에서 나오는 이윤은 그 기업에 소속된 사람들에게 보다 윤택한 삶을 가져다 줘야 한다는 원론적 이야기다.
일주일 전 말레이시아 서부해안의 항구도시 ‘루뭇’을 다녀왔다. 쿠알라룸푸르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3시간 가량 달려가는 동안 지평선까지 보이는 평야의 대부분은 야자나무로 가득 차 있었다. 말레이시아는 세계 최대의 야자유 수출국이다. 수확도 쉬워 가만히 앉아서 일정액의 무역수지를 항상 보장받고 있다.
33만㎢로 한반도 1.5배 넓이의 국토에 2천200만명이 살고 있으면서 석유를 비롯한 각종 지하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그러나 전체 수출액의 4분의 1을 공산품이 차지할 정도로 꾸준히 공업화가 이뤄진 나라다.
그러나 정작 놀란 것은 루뭇에 있는 현지공단의 주변 여건을 보고 나서다.
5천여개의 다국적 기업이 진출해 있고 전체 외자투자액의 68% 이상을 미국과 유럽, 일본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해답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바로 ‘근로자들에 대한 삶의 배려’다. 근로자들과 함께 현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소기업 경영자들 역시 이 개념에서는 근로자로 봐야 할 것이다.

한국보다 쾌적한 말레이시아 공단
말레이시아 공단은 입지여건상 당연히 항구 근처에 자리잡고 있고, 그 항구들은 대부분 천혜의 관광휴양지를 끼고 있다. 이 정도라면 말레이시아가 우리나라보다 자연입지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저 지하자원이나 팔고 사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공업화된 나라며 외국의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나라다.
말레이시아 공단은 모두 열대 야자수가 늘어진 하얀 모래의 바닷가를 주변에 두고 있고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큰 리조트와 고급 호텔을 끼고 있으며 또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나 열렬히 사랑하는(?) 골프장이 가까이 있다. 그리고 그 사용가격 또한 우리로서는 ‘Dream Price’다.
공단에 상주하며 땀흘리는 외국 근로자들에게는 ‘본국 같은’ 혹은 ‘본국보다 더 좋은’ 생활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
루뭇공단과 말레이시아 공업발전청(우리의 옛 ‘공업진흥청’)을 함께 방문했던 우리 중소기업인들은 실제로 쿠알라룸푸르까지 출장 온 지방공단 책임자들에게 ‘골프장도 있는가’를 물었고 그들도 ‘좋은 골프장과 풍광 좋은 휴양지’가 있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국내공단 배후시설 아쉬워
말레이시아는 특히 공단의 인력문제를 아세안 소속국가인 인도네시아로부터 해결하기 위해 협조하고 있다. 우리 기업이 말레이시아에 공장을 갖는다면 우리는 자본과 기술을, 말레이시아는 입지와 설비를, 인도네시아는 인력을 담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말레이시아는 인구가 적지만 인도네시아는 1억이 넘는 인구를 갖고 있으며 그만큼 임금 격차도 크다. 말레이시아에서 불법체류중인 인도네시아인은 약 3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현재도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높은 임금을 위해 상어떼와 해적이 우글거리는 남지나해를 보트로 건너고 있다.
이처럼 천혜의 자연경관에다가 고급의 휴양위락 시설마저 갖추고, 이웃 나라의 값싼 노동력까지 활용해 선진기업들을 유치하려 애쓰고 있는 말레이시아 공단과 우리나라 공단을 함께 비교해보자. 과연 누가 더 경쟁력을 갖고 있는가? 전기와 상수도, 배수시설, 연결도로만 갖췄다고 공단이 다 된 것이 아니다.
안산 반월공단의 초기를 생각해보자. 공장 밥이 지겨워 외식이라도 할라치면 얼마나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는가? 교통수단마저 제대로 없어 이른바 ‘공원’들은 싸구려 저녁 한 번 먹고 늦은 시간에 먼 거리를 걸어서 기숙사로 돌아와야만 했다. 비좁은 공장 기숙사 말고는 마땅히 방을 얻어 지낼 배후도시 기반도 없다. 그 큰 공단을 파출소 하나가 담당해 주요 우범지역으로까지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던 것을 기억할 수 있다.
지금이야 우리의 공단조성 현실이 그때보다는 좋아졌겠지만, ‘근로자의 삶’을 편리하게 해 줄 기반시설을 갖추고 입주기업들이 별도의 부담을 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의 공단은 과연 몇이나 될까?
자학하자는 것이 아니다. 더 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생각도 선진화할 때라는 것이 루뭇 바닷가에서 느낀 생각이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