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작은 섬나라였던 영국은 19세기 막강한 해군과 함께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던 무역선들을 통해 세계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됐다. 수 많은 무역선들의 활약만큼 배가 침몰하는 해난사고도 자주 발생했는데, 그 원인은 다름 아닌 과적이었다. 당시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던 영국 하원의원 사무엘 플림솔은 선주들이 무리하게 화물을 싣는 것에서 비롯됨을 밝혀내고 안전을 위해 한도를 설정해 적정량을 싣자는 최대 적재허용선을 입법화했다. 이 것이 오늘날 세계 모든 국가들이 조약으로 지키고 있는 ‘플림솔 라인(Plimsoll Line)’이다.
‘플림솔 라인’은 생명과 직결돼 있다. 아무리 화물 운송이 급하고 중요하다고 해도 임계치, 즉 한도를 넘지 말아야 한다. 만일 배가 허용하는 최대치를 넘긴다면 초과된 화물뿐만 아니라 배도 통째로 잃고 귀중한 선원들의 생명까지도 희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로 리스크관리 관점에서 자사의 ‘플림솔 라인’을 상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리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경우 자산 및 현금 융통성, 연구, 기술인력의 이직률, 재고 회전율, 생산 품질도, 영업 수익율 등이 ‘플림솔 라인’으로 예를 들 수 있겠다.
해마다 위기에 봉착했다고 외쳐대는 기업이 있다. 비즈니스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니 항상 위기의식을 갖자는 것은 나쁘지 않으나 계속되는 외침은 오히려 위기에 무감각해지는 기업문화와 직원을 양산할 뿐이다. 시장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감지하기 위해 기업 내에 정교한 ‘나팔수’, 그리고 문제가 생기더라도 다시 ‘Business As Usual’, 즉 정상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방향타를 조정하는 제대로 된 ‘항해사’가 있으면 된다.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2년차를 시작하고 있는 LA다저스 류현진 선수를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는 ‘위기관리’ 능력이다. 전문가들은 류현진이 자신이 좋았을 때 몸상태, 투구 밸런스, 손끝의 감각을 기억하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말한다. 잠시 흔들리더라도 재빨리 그때 기억을 되살리고 그 상태로 되돌아가는 길을 빨리 찾는다. 예를 들어, 투구 패턴 중 하나인 체인지업의 각이 좋지 않을 경우, 다른 선수들처럼 불펜에서 많은 공을 던져가면서 밸런스를 회복하지 않는다. 대신 각이 좋았을 때 여러 가지 감각의 기억을 되살려 금세 회복한다. 류현진이 선발 투구 사이에 불펜 피칭을 하지 않는 이유도 굳이 불펜 피칭을 통해 다시 한 번 몸이 좋은 밸런스를 기억해 되살려내도록 채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상, 최적의 상태를 기억하고 있고, 이를 다시 끄집어내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그만큼 어깨를 소모하지 않아도 돼 중요한 시점에서 사용할 체력을 아낄 수 있다. 어쩌면 머리의 기억이 아니라 몸의 기억이다. 
또한 탁월한 위기관리능력 중 하나로 ‘정신력’을 꼽았는데, 이는 단순히 ‘상대를 꼭 이겨야겠다’는 투쟁심에 그치지 않는다. 경기 상황에 따른 주자의 움직임, 수비진의 시프트 형태 등을 이해하고 최근 경기에 대한 기록지만 보고도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성공하는 기업의 리스크관리 능력을 이야기할 때 ‘복원력’과 ‘민첩성’이라는 두가지 요소를 꼽는다. 복원력(Resilience)은 부정적인 사건이 야기한 역경과 충격을 딛고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특성이다. 또 하나의 요소인 민첩성(Agility)은 위기상황을 피하고, 기회를 포착하는 적응력을 기업에 제공한다. 류현진의 탁월한 위기관리를 가능케 하는 복원력과 배가 침몰하는 재난을 피할 수 있도록 상황을 예상해 부정적 영향을 회피하는 플림솔 라인과 같은 정교한 민첩성의 적절한 밸런스를  확보하는 기업만이 비즈니스의 부정적인 영향을 견뎌내면서도 날렵하게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 글  : 유종기(한국IBM 실장 / 「리스크 인텔리전스」의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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