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장에 기계부품을 수출하는 국내 중소기업 N사는 최근 엔화 대비 원화절상(원화의 가치 상승)으로 인해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곤두박질치고 있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실상 계속되고 있는 원고 강세에서는 신규 수주는 꿈도 못 꾸고 있는 실정. 아베노믹스(엔저 정책을 필두로 한 아베 총리의 경제전략)가 지속되면 될수록 대일본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중소기업들의 수출품목들은 앞으로도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환율 변동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소기업의 아픈 목소리는 또 있다. 중동 지역에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H사도 요즘 1달러 당 1000원선이 무너질지 모르는 최악의 환율 위기 속에서 간신히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H사의 한 관계자는 “하반기에 환율 하락분을 가격에 반영할 경우 바이어들의 주문을 받기가 더욱 어려울 것 같다”라며 “원·달러 환율 변동의 손실을 어떻게 만회해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환율 마지노선 이미 깨져”
수출 중소기업들이 최대 마지노선으로 삼는 환율은 과연 얼마일까. 최근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기문)가 수출 중소기업 1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손익분기점 환율은 1달러 당 1038.1원으로 나타났다. 적정 환율의 경우는 1086.3원으로 집계됐다. 엔화의 경우 100엔 당 1059.4원, 적정 환율로는 1100.6원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미 원·달러 환율과 원·엔 환율은 마지노선을 깨고 1000선까지 위협하는 모양새다. 이른바 ‘1000·1000’ 시대가 도래할 지도 모를 판국이다. 25일 현재 원·달러 환율은 1024원선이며 원·엔 환율은 1007원선이다. 이미 수출 중소기업의 손익분기점 환율과 적정 환율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환율 하락 폭은 최근 들어 더 심화되는 분위기다. 지난 1분기 내내 1060∼1070원선을 오가던 원·달러 환율은 4월 들어 처음으로 1050원선을 깨고 떨어지더니 5월에는 1020원대에 진입하고 있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이 경기전망을 하면서 ‘1000원선 붕괴설’까지 거론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러한 빠른 하락 폭의 ‘속도’ 때문이기도 하다.
하반기 한국경제 주요 변수는 결국 환율이라는 얘기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연말까지 1000원선 가까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고 이에 맞춰 국내 경제성장률 역시 0.2% 하락할 것”이라며 “예상보다 빠르게 환율이 하락할 경우 경제 성장률 하락 속도와 그 폭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新환율정책 절실
하반기 한국경제 회복에 있어 최대 걸림돌이 돼 버린 환율불안의 대책은 없는 걸까. 김정식 한국경제학회장은 “수출이 지금처럼 호조를 보인다면 정부의 연간 경제성장률 전망치인 3.9%를 달성할 수 있겠지만, 환율 하락으로 수출이 악영향을 받을 경우 전망치를 채우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울러 그는 “환율이 매우 중요한데도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쉽게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앞으로 새롭게 꾸려질 내각이 어떤 환율 정책 카드를 선보일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미국에 전자부품을 수출하는 A사 관계자는 “수출 중소기업의 환변동보험 가입 규모를 수출액 별로 차등적용하는데 이를 정부가 최대한 높은 수치로 끌어올려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중국에 세라믹을 유통시키는 K사 관계자는 “적어도 원·달러 환율이 1020원선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최대한 방어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환율 하락세가 경상수지 흑자 폭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 3월 경상수지는 73억5000만달러로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25개월 연속 흑자행진이었다. 우리투자증권은 최근 환율 하락을 대내적으론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고치를 달리고 있고 대외적으로 유로화 강세 등으로 글로벌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지형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국내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수입증가로 작년보다 줄어들 것”이라며 “또 경상수지 흑자와 환율의 상관관계는 외환위기 이후 현저히 낮아져 원화가치 상승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민간소비·투자로 내수 살려야
올해 국내 1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대비 0.9%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3.9% 성장해 3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최근 주요 경제기관들이 발표한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긍정적인 편이다. 한국은행이 4.0%, 기획재정부가 3.9%, 한국개발연구원이 3.7%, LG경제연구원이 3.9%, 현대경제연구원이 3.8% 등이다. 전반적으로 완만한 경기 회복세를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세월호 사고에 따른 내수시장 침체 장기화에 따라 이러한 전망치가 과연 실현 가능할지 미지수다. 사실 지난해 내수 부진을 만회한 것은 정부가 부랴부랴 편성한 추가경정예산안 덕분이었다.
올해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은 이미 상반기에 대부분 조기집행 했다. 이제는 민간시장의 소비 증대와 기업의 투자 등이 되살아나야 경기 회복세를 이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시중 은행장들과의 금융협의회에서 “선진국 경제가 전반적인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국내 경제는 세월호 사고 이후 민간소비의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며 “민간소비 부진은 고용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내수 디플레이션 우려된다’ 보고서에서도 내수부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보고서는 “세월호 사고로 인한 경제적 고통이 서민형 자영업자에게 집중되면서 내수경기 둔화가 더욱 심화될 수 있다”며 “소비지출 중에서 세월호 충격과 관련 깊은 오락문화, 음식숙박 부문의 비중은 약 20%에 달하는데 향후 3개월간 해당 분야의 지출이 5% 감소한다고 가정했을 때 전체 민간소비 증가율은 2분기에 0.3%포인트, 상반기에 0.5%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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